조직의 행태에 익숙한 사람들은 일단 수립된 절차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표준행동절차에서 유래되는 구체적 작동이 어떠한 형태를 띠는지, 그리고 떄로 외부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이는 것들이 왜 조직내부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지를 이해할 것이다. 과거의 프로그램을 새로운 환경에서 적용할 때, 반독립적 지위를 누리는 조직 간에 허점이 있을 때, 그리고 정치지도자가 조직의 목적에 반하는 업무를 강요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조직도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하지만 그 변화는 작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큰 변화는 항상 위기가 일어나기 전(前)이 아닌 후(後)에 일어난다.(쿠바 미사일 위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위기를 겪고 나서야 소련정부는 핵무기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의 정치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그들이야말로 어떠한 상황에서 무슨 조직이 어떠한 프로그램을 적용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떄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때로 기왕의 조직 푸로그램을 새로운 맥락에 적용하고, 복수의 조직에 존재하는 통상절차를 서로 종합하기도 하며, 나아가 조직의 프로그램에 과감한 변화를 도모해야만 한다. 때로는 한 조직 내 서로 다른 부서 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이들 조직 내부에서 부서를 선택하는 것도 정치적 결단임을 깨닫게 된다.
<결정의 엣센스> 274쪽, 그레엄 앨리슨, 필립 젤리코, 모음북스
아시모프가 심리역사학이라는 학문을 만든 동기는 분자의 브라운 운동 때문이라 한다. 분자 개개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없지만, 그 분자 전체의 움직임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 개개인은 별개의 개성을 가진 인간이지만(그래서 그 개인이 조직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조직 전체는 특정한 움직임과 의지를 가진 거대한 모습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바꿔 말해서 개개인의 움직임만으로 조직 전체의 움직임을 바꾸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명의 움직임으로 이런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완전한 뒤바뀜은 존재할 수 없다. 서서히 조금씩, 물길이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그 닿는 길을 달리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