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되 생각하지 않음(學而不思)'은 배우는 것에 맥놓고 매몰되었거나, 배우면서도 생각은 멀리 떠난 경우인데 이럴 때는 배워도 한 귀로 듣고 또 한 귀로는 흘릴 뿐, 내게 남는 것이 없다(罔). 객관(대상)에 휘둘리기만 해서는 소득이 없는 것이다. 이 대목은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해버리면 덕을 버리는 것(道聽而塗說, 德之棄也)"(17-14)이라는 경고와 궤를 같이한다.
  한편, '생각하되 배우지 않음(思而不學)'은 제 생각에만 골똘하여 타당성을 검증하지 않은 경우다. 예컨대 성경책 한 권 달랑 들고 입산(入山)해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휴거 소동 같은 것들이 그래서 생긴다. 자기 생각에만 골똘하여(思), 근 2천 년간 성경학자들과 교부(敎父)들이 이루어놓은 성경에 대한 방대한 주석들은 공부하지 않은(不學) 결과 빚어진 혼돈(殆)인 셈이다. 주관의 오류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배우고 생각하는 것은 변증법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배우고, 생각하며, 또 그 갈무리된 생각을 바탕으로 더 널리 또 더 높게 배워가는 것,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지적한바, 호학의 실행과정인 셈이다. 그래야만 몸에 제대로 학문이 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고서 생각하고(學而思), 생각한 것을 바탕으로 배우는(思而學) 변증적 긴장을 늦추지 않을 때 참된 배움(學-習)이 가능하리라.


<한글세대가 본 논어 1> 96~97쪽, 공자, 배병삼 주석, 문학동네

  위 인용문 자체만으로도 이미 내가 할 말은 더 없다. 저대로 따르기만 할 수 있다면! 그러나 굳이 한 마디 덧붙여 본다.
  생각하되 배우지 않음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모순을 혁파하고 세상의 밝은 부분을 지향하지만, 자신의 앎이 그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그런 차이 말이다. 정신적으로는 높은 격을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실제 앎은 전혀 그 격에 맞지 않는 초라함이 있다면,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을 것이다.
  이는 결국 내 현재 모습을 내 입으로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이 넘치고 세상의 모순에 분노하지만, 결국 실력은 전혀 없는 현재의 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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