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을 방 안으로 데려가서 완전히 낯선 사람 옆에 앉히고, 100달러를 준다고 하자. 당신은 낯선 사람과 돈을 나눠 가져야 하는데,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얼마를 줘도 좋다. 상대방이 그 돈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100달러를 모두 나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당신은 단 한 번만 이 게임을 할 수 있고, 방을 나간 다음에는 게임에서 만난 사람을 결코 다시 볼 일이 없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진정한 합리주의자라면, 그리고 당신이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고 믿는다면, 선택은 아주 쉽다. 두 사람은 단 한 번 만나고, 낯선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별로 선택할 것이 없다. 당신이 얼마를 내놓든 그는 이 돈을 받아서 떠날 수 있다. 돈이 얼마라도 있는 게 전혀 없는 것보다 나으니까, 그 사람은 돈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내놓을 수 있는 최소의 금액인 1달러만 내놓아도 그 사람이 이 돈을 받는다고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은 99달러를 갖게 될 것이다.
(중략)
  이제까지 연구자들은 말 그대로 수백 번의 게임을 연구했다. 이런 연구에서는 대개 학생들을 모집해서 게임에 참여시키는데, 지원한 학생들을 무작위로 짝지어 10달러나 20달러로 게임을 하게 한다. 여기에서 이론가들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이러한 단발성 실험에서 '제안자' 역할을 맡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의 40퍼센트쯤을 내놓았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나, 너무 적게 내면 거절당할 것을 염려해서 그렇게 했다. 한편으로 '수령자'의 절반 정도는 20퍼센트 수준 이하면 거절했다. 이런 경향은 돈을 수백 달러로 올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순수한 이기심에 따라 행동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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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거슬리는 점은, 이기주의를 강조하는 현대 경제 이론 탓에 경제학자들 자신이 '보통' 사람들보다 더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 전공의 대학원생들에게 데이비드 흄이 묘사했던 농부와 비슷한 상황에서 협력 게임을 하게 했다. 심리학과와 수학과 학생들은 보통 사람들과 거의 똑같게 행동했다. 두드러지는 한 집단은 경제학과 대학원생들이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이 언제나 이기적으로 행동한다고 확신했고, 자신들도 똑같이 행동했다. 그들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더 자주 협력을 거절했다. 실제로 경제학(적어도 과거의 경제학)을 공부하면 사람이 탐욕스러워지는 것이다. 이 연구의 논문 집필자가 말했듯이, "이기주의 모형에 노출되면 스스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이 관찰을 보면 조금 걱정스러워진다. 세계 각국 정부들이 경제학자들의 조언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원자> 160~164쪽, 마크 뷰캐넌, 사이언스북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그 속에 담긴 세상을 바라보는 합리적 시선에 매료되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세상이 모두 합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만물이 자로 잰 것 마냥 딱 떨어지는 것은 역시 아니다. 케플러가 행성의 공전궤도가 완벽한 원형이라고 생각하여 시간을 허비한 일화를 생각해 보면, 세상이 완벽하고 합리적이라는 것은 문제가 있는 생각일 가능성이 높은데도 말이다. 나는 과연 합리적인 시선으로 얼마나 많은 재단을 해 온 것일까? 알 수 없다.
  자신이 공부하는 학문, 자신이 의탁하는 사상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사로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문과 사상이 나의 생각을 얼마나 옭아매고 있는가? 그리고 그 생각의 구속이 나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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