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친구가 술이라도 보내오면 좋아라 마시고는 취하여 이렇게 스스로에 대한 찬贊을 지었다.


  제 몸 위함은 양주楊朱를 닮았고
  겸애兼愛함은 묵자墨子를 닮았고
  집안에 양식이 자주 떨어지는 건 안회顔回를 닮았고
  고요히 앉았기는 노자老子를 닮았고
  자유롭고 거리낌 없기는 장자莊子를 닮았고
  참선하는 듯함은 부처를 닮았고
  불공不恭스럽기는 유하혜柳下惠를 닮았고
  술 잘 마시는 건 유령劉伶을 닮았고
  밥 얻어먹는 건 한신韓信을 닮았고
  하염없이 자는 건 진단陳摶을 닮았고
  거문고 타는 건 자상호子桑戶를 닮았고
  저술하는 건 양웅楊雄을 닮았고
  자신을 큰 인물에 견주는 건 공명孔明을 닮았으니
  나는 얼추 성인聖人일세!
  다만 키가 조교曺交만 못하고
  청렴함이 오릉於陵을 못 따라가니
  부끄럽네 부끄러워!

  그리고는 혼자서 껄껄 웃었다.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 박지원, <연암을 읽는다> 89~90쪽에서 재인용

  저 엄청난 '자뻑'의 수사는 지금의 우리들로서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할 정도이다. 한 마디로 좋다는 것은 다 끌어당겨서 자신에게 붙인 것이다. 박지원은 그래도 조금은 민망했던지 키와 청렴함의 두 개 항목만은 못 미친다고 말했지만, 그 두 가지 모자람이 어디 대수겠는가.
  그러나 저 '자뻑'에서 사람의 이름을 빼면, 박지원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의 이름을 견주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의 형상이 슬그머니 드러나는, 그것은 말하자면 투명인간이 아닌가? 이는 다시 말해 오히려 자신이 보잘것없고 하찮고 미미한 존재임을 감추는 듯이 드러낸 것이다. 술에 취해서 껄껄 웃으며 하는 한바탕 술주정이지만, 그 술이 깨고 난 뒤의 씁쓸한 느낌이 지금의 내게 그대로 전해져 온다. 안타깝게도 지금 내 방 안에는 술이 한 병도 없고, 술을 사 마실 돈도 없으며, 술을 보내줄 친구도 없다. 맨정신으로 자화자찬 대신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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