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부들은 다문화주의의 장점에 대해 다시 숙고하고 있으며, 민족종교(예를 들어 이슬람교) 사회들의 이례적인 집단권리가 그러한 사회의 지도자들을 양산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내부적 다양성을 차단하고, 그 추종자들을 유럽사회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권력을 얻고 유지한다. 그들은 인종차별 폐지론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동인들을 복종적인 지역인으로 되돌려놓음으로써, 그들 신앙의 가장 완고하고 퇴보적인 특징들을, 보수적인 고국에서 아직 500년 전의 분파 간 전쟁의 상흔을 지니고 있는 유럽으로 옮겨 놓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두 원리 간의 대결이다. 한쪽에서는 토착 인구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 중 상당수가 진지하게 신앙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종교적으로는 물론 인구상으로도 활기가 넘치는, 신앙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이주자들의 물결이 쉼 없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2005년 『월간 대서양(Atlantic Monthly)』이 질문했듯 "무슬림의 유럽인가?"라고 묻는 이들은 결코 과장의 오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Savage, 2004). 현재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적 미래는 서남아시아의 과거에 꼼짝할 수 없이 사로잡혀 있다.


<공간의 힘> 112쪽, 하름 데 블레이, 천지인

  역사는 지나간 것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역사는 우리에게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 발자취이자 흔적이다. 그 흔적은 때로는 돌연히 우리 옆에 나타나 인사한다. 데이빗 보위가 노래했듯이, 우리는 그 역사를 마주보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난 당신이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요......"
  역사의 흔적이 계속해서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준다면, 과거를 깨끗하게 마무리짓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거에 대한 정리를 포기한다는 것은 논리학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옳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깨끗한 정리에의 시도' 역시 나중에는 새로운 역사가 되어 다시 그때의 현재에 영향을 줄 것이다. 굳이 과거사 뿐이겠는가? 옳게 살려고 하던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 중의 대다수가 쓴 맛을 보고 좌절하고 실패했다. 그들 중에서는 그래도 지조를 지킨 이도 있었고, 변절을 한 이도 있었으며, 은둔을 택한 이도 있었다. 그리고 역사는 그 모든 행적을 있는 힘껏 후대에 전해 왔다.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는 어떻게 지금을 살아갈 것이냐?'라고 꾸준하고 준엄하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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