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가 일찍이 학교에서 깨달았던 바, 이 전략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개인 의사를 존중하는 한 여선생이 학생들을 둥글게 앉혀 놓고 수업과 관련된 문제점을 자신에게 좀 일러달라고 말한다. 먼저 제일 지저분하고 가난한 애한테 묻는다. "조니, 네 생각은 어때?" 그랬더니 대답이 이렇다. "전 산생님이 거시기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왕도 똑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수천의 불평문들이 최근의 미국 모델을 따라 헌법의 제정을 요구했다. 대부분 조세 경감도 빼놓지 않았다. 다수는 언론의 자유와 교화의 재편, 그리고 왕실 '쓰레기'의 종식을 옹호했다. 이런 와중에 다른 수많은 불평불만도 함꼐 터져나왔으며, 그 모두가 절대군주제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어야만 해결 가능한 것들이었다. 아까 그 선생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뭐가 불만이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선생 자체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그 질문의 답을 얻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혁명만세> 70쪽, 마크 스틸, 바람구두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재미있게 서술한 이 책에서, 위 글은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왕이었겠지만, 그 '무엇이든'의 의미에서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은 제외한'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으리라. 이런 식의 '무엇이든'은 어느 정도까지는 가능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상황이 개선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모순이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못한다면, 그 '무엇이든'의 전제 조건이 무너져야만 문제 해결이 가능해지고 말 것이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어떤 일을 대충 수습한 뒤에도, 확실하게 일을 제대로 마무리짓는 뒷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해도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자신의 뼈와 살을 도려내고 나의 피를 흘릴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 넘기고 말겠다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들에게 경계하는 뜻으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