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였던 국왕 제임스 2세와 프로테스탄트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의회 사이의 종교적 대립이 계기가 되어 표면화된 양자 간의 갈등은,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의 남편인 네덜란드의 군주 오렌지 공 윌리엄의 군대가 의회의 내원 요청에 응함으로써 의회 측의 승리로 끝났다. 제임스 2세는 퇴위하고 윌리엄과 메리 부부가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의회로부터 '권리장전'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영국의 국가체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크게 변화했다.
첫째, 의회가 명실상부한 국가의 최고기관이 되고 국왕도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둘째, 재정에 관한 권한도 의회가 장악하게 되었다. 셋째, 재판관은 형사사건으로 유죄가 확정되거나 의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면 파면되는 일이 없고, 재판소의 독립성도 확보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실제로 국왕의 권한을 남용한 제임스 2세가 추방당함으로써 의회를 최고기관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체제가 국민으로부터 충분히 신뢰받을 만한 것이 되었다는 점이다.
노스와 웨인가스트는 명예혁명에 의한 제도 변화의 경제적 의미를 국가 재정과 민간의 경제활동이라는 양면에서 검토했다. 우선 재정은 명예혁명 이후 채무 잔고가 증가하는 한편, 국채 이자가 현저하게 감소했다(표<3-2>). 이것은 금융시장이 영국 정부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민간의 경제활동에서는 증권시장의 규모가 확대되고 은행의 수가 증가했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표 3-3>).
<제도와 조직의 경제사> 104~106쪽, 오카자키 데쓰지, 한울
신뢰가 만들어지려면 그 대상이 서 있는 기반이 탄탄해야 한다. 대상을 믿을 수 없고 그 기반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신뢰가 있은 뒤에야 소위 말하는 '안정과 번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전에 했던 말과 지금 했던 말이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을 리 없을 터이다. 왜 그때의 말과 지금의 말이 다른지를 납득이 가게 설명할 수 있다면 모를까, '나는 예전에 그리 한 적이 없었다'라거나 '그런 해석은 모두 오해이고 오독이다'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그런 이들이 이야기하는 '안정과 번영'에 과연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제도의 안정이 국가와 민간의 경제적 가치를 이끌어 올렸다는 위의 연구는, 국가 이전의 개인, 그리고 그 개인들이 이루는 작은 사회 같은 영역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안정은 무엇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직업? 부? 학식? 현재의 나는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인 부분이 없는 듯 하다. 지금의 이 작업이 과연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이끌어 줄 것인가? 오늘은 유달리 생각을 정리하기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