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 로저 핀키와 로드니 스타크는 1776년에 고작 17퍼센트의 미국인만이 교회에 충실했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새로운 교파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갈구하면서 1850년에는 그 비율이 두 배인 34퍼센트가 되었고, 1926년에는 다시 배가 되어 56퍼센트에 도달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모르몬교와 여호와의 증인 같은 가장 엄격하고 열광적인 교파들은 공격적으로 새로운 신도를 전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대상인 가톨릭교회나 주류 프로테스탄트 교회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유지한 것이다.
  미국의 종교 서열이 변화하는 방식에는 일종의 모순이 존재한다. 1960년대에 세속 사회가 종교계에 보낸 메시지는 '현대화'인 것처럼 보였다. 종교계의 선택은 시대 속으로 사라지지 않으려면 세속적인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과학적 발견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세계 전역에서 가톨릭교회가 그런 선택을 했지만 그것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효과를 본 쪽은 그 반대 노선을 택한 교파였다. 번영을 누린 교파는 근본주의자들과 성경을 진보적으로 해석하여 설교에 반영하는 교파, 그리고 성령의 힘을 강조하는 기독교 교파들이었다. 다시 말해 과거로 한 걸음 물러서서 신앙이 일종의 벽이 됨으로써 신도들에게 높은 비용을 부과하고, 공동체를 외부와 격리시켜야 한다는 전통적 명제를 회복시킨 교파들이었다.


<모든 것의 가격> 297~298쪽, 에두아르도 포터, 김영사

  통계학자 호텔링은 훗날 '호텔링의 원칙(Hotelling principle)'으로 불리는 이론에서, 양당제에서 정당의 강령과 공약이 비슷해지게 된다는 주장을 폈다. 유권자가 두 정당 중 자신과 가까운 정당을 선택한다면, 정당이 가장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가장 많이 모인 '중심'을 노린 강령과 공약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두 정당은 그 '중심'을 향해 수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무척 설득력있는 이론이다. 굳이 정치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이 논리는 적용가능하다.
  그러나 때로는 상당히 협소한 계층만을 위한 집단이 존속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러한 집단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의 집단 '공동체'를 제공하고 그 안에서는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유대감과 안온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팎으로 이동하는 것을 힘들게 만든 것도 큰 원인이 된다. 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진입장벽(entry barrier)이 높아서 진입과 탈퇴에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 좁은 '공동체'가 주는 안락함은 바람직한 것인가? 그것은 일종의 현실도피로서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 공동체의 좁은 시야를 공유하면서, 세상을 단순한 한두가지 논리로 재단하게 되고, 그 판단을 공동체의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나의 협소함을 정당화시키고, 나의 편협함을 잊을 수 있는 작용을 하지는 않을까?
  세상의 다양함을 접하는 나의 시야가 비슷비슷한 결론을 내리는 것 같다면, 주위를 돌아봐야겠다. 내가 지금 넓은 대지에 서 있는지, 아니면 좁은 우물에 나도 모르게 빠진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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