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습니다. 선생의 말씀이 아주 옳습니다. 공자 문하의 70명의 제자가 스승에게 물은 내용이란 것도 인仁과 효孝에 대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후세에는 그렇질 않아서 제자가 스승을 처음 찾아와서 책을 펴고는 문득 이기理氣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선생도 옷깃을 여미고 높은 자리에 올라앉아서 문득 성명性命을 말합니다. 지금의 학자라는 사람들은 학문적으로는 하늘과 인간의 이치를 꿰뚫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고을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이치로는 만물의 현상을 살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 따위 학문하는 사람을 두고서 이학理學선생이라고 말합니다.
시골의 글방이나 서당에서는 천품이나 자질이 고루하고 꽉 막혔으며 행동거지도 괴상하고 현실감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략 경전이나 익히고 겨우 글자의 뜻이나 통하면 모두 선생 자리를 열어서 강의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묵고 썩어빠진 것을 맛보고는 좋은 곡식이라고 하고, 덕지덕지 기운 옷을 걷어모아서는 좋은 가죽옷이라고 하며, 고집쟁이의 자기주장을 도리어 법도를 지키는 사람이라 하고, 후한後漢의 호광胡廣이라는 학자처럼 여기저기 붙는 처세를 하면서도 스스로는 중용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 따위 학문하는 사람을 일러서 도학道學선생이라고 말합니다."
<열하일기 2> 180~181쪽, 박지원, 김혈조 옮김, 돌베개
박지원이 열하에서 만난 추사시라는 선비가 이 말을 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유학에 대한 비판에 박지원은 정색하며 싫은 기색을 보인다. 그러나 그 미친 사람의 헛소리를 왜 이리도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가? 단지 기록의 공정함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미친 소리로 가장하여 자신이 정작 하고팠던 말을 기대어 빌리는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다.
학문의 발전과정을 보면, 위에서 비판하는 이학선생과 도학선생의 풍모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굳이 유교만 그렇겠는가. 본래 학문의 참된 뜻이나 원래 말한 이의 주장은 잊고(혹은 무시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혹은 너무나 쏠려있고 좁아서 실제로는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지식놀음을 자랑스럽게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혹은 어디선가 편협하게 주워들은 것을 최고라고 우기며 더 이상의 공부를 죄악으로 여기고, 자신의 이랬다저랬다 함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이것이 어찌 박지원 당시의 이야기만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혹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이학선생이나 도학선생의 풍모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고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위는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때로는 정색할 정도로 싫은 이야기도 옮겨 쓰고 있는데, 이는 정말로 내가 싫어서 그러는 것인가, 혹은 나 역시 나의 뜻을 가탁하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