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고로 피니는 극도의 주관성…… 그리고 극도의 편집증에 빠진 세상 안에서 우리가 이런 사건을 상대하고 있는 거라고 통보해 준다. 물론 '우리'는 윌마의 말을 즉시 믿는다. 비록 우리에게 객관적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만약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책 제목을 통해서 '바디 스내처(신체 강탈자)'가 저기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안다.
처음부터 우리를 윌마의 편에 서게 함으로써, 피니는 우리를 황야에서 불길한 예언을 부르짖던 세례 요한 같이 변모시킨다. 1950년대 초반에, 공산주의자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여겼던 사람들, 또는 어쩌면 반공주의라는 이름을 빙자해 파시스트의 음모가 진행 중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에게서 이 소설이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던 이유를 알아보기란 상당히 쉽다. 왜냐하면 어느 쪽 사람들의 의견이 맞든 또는 두 쪽 다 틀리든 간에, 이 소설은 강력한 편집증적 의미를 내포한 음모를 다룬 작품이기 떄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온갖 종류의 정치적 수다쟁이들에게서 정치적 우화라고 불릴 만한 딱 그런 종류의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죽음의 무도> 520쪽, 스티븐 킹, 황금가지
편집증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들은 왜 편집증적일까? 글쎄,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모두 모르지만 나만 아는 진실'이라는 것이 주는 쾌감(우월감 같은?)과 초조함(입이 근질거리니까?)이 그들을 중독시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세상의 진실에 대해서 외치고, 그걸 모르는 자들을 욕하고 비웃는 것이 아닐까? 경문왕의 복두장이(혹은 미다스 왕의 이발사)는 평범한 사람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자기만 아는 비밀 때문에 편집증적으로 몰리는 것을 보라. 그나마 대숲(혹은 갈대밭)에서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걸로 족했다는 것을 보면, 그들은 비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편집증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틀렸다면? 그들 소리높여 주장하는 '나만의 진실'이 틀렸다면? 그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음모, 왜곡, 조작, 선동. 과격한 단어로 적의 비루함을 내보이며, 자신이 상대적으로 고결하다는 것을 보인다. 자신을 찌질함으로 가장하는 자들조차 그러하다. 그렇지, 암만 그래도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보다는 낫잖아? 하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똥 묻은 개 같아 보인다. 글쎄, 모르는 일이다. 혹 정말로 내가 똥 묻은 개였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내가 똥 묻었음을 반성할지언정, 겨 묻었음을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