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소재 가치가 높을수록 퇴장되기 쉽다는 주조 화폐의 속성에 의해, 또 주조 이익을 얻어 재정을 보전하려는 각국 정부의 시도에 의해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몰아서 쫓아냄)하는 현상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가리켜 그레셤의 법칙Gresham`s law이라고 부른다. 즉 양화는 용해되거나 해외로 유출되어 화폐 기능을 상실하고 악화만이 유통을 계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신대륙 발견 이후 금보다 은이 대량으로 공급되에 기존의 금과 은 간의 교환 비율이 깨졌는데, 이때 상대적으로 악화인 은화의 통용력이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 이 역시 그레셤의 법칙이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


<금융경제학 사용설명서> 76~77쪽, 이찬근, 부키

  그레셤의 법칙은 경제학에서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고차 시장인데, 좋은 중고차와 나쁜 중고차가 있을 때,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은 두 가지 차 중 어느 차가 자기 것이 될지 알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한다. 그럴 경우. 구매자는 좋은 중고차를 사는 값과 나쁜 중고차를 사는 값의 중간 정도 되는 값을 제시할 것이다. 그 값을 보면 좋은 중고차를 가진 판매자는 자기가 생각한 가격보다 낮기 때문에 차를 팔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나쁜 중고차를 가진 사람은 실제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차를 팔려고 할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중고차 시장에서는 좋은 중고차는 나오지 않고 나쁜 중고차만 매물로 계속 나오게 된다.
  이 법칙이 화폐나 중고차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와 집단 속에서도 이런 현상은 눈에 띈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던 '물 좋던' 공간에 하나둘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공간의 평균적인 질이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면 '좋은'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효용이 낮아지면서 점점 그 공간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이 그 공간으로 계속 유입되고, 나중에는 '이상한' 사람들만 가득한 이상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세상은 계속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기만 하는, 점점 퇴락하고 오염되기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이상한 공간의 모순이 터져나와 커다란 변혁이 도래하게 된다. 그 변혁의 결과가 어떤 식이 되건, 그 전의 모습과 후의 모습은 같지 않을 것이다. 혹은, 공간이 이상해지기 전에 조금씩 자정작용을 펼치는 것으로 이상한 공간이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이 되었건, 세상은 악화가 가득하기만 한 세상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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