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학생들이 누구나 읽었던 『통감』은 『자치통감』을 간추린 『통감절요』였다. 중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잊혀진 책을 조선시대 내내 무슨 대단한 경전처럼 떠받들었다. 거질을 간추리다보니, 이 책은 곳곳에서 앞뒤 맥락도 없고 이야기가 뚝뚝 끊어졌다. 그래도 온 나라가 홀린 듯이 이 책만 읽었다. 아이들은 이 책 읽다가 질려서 그만 공부에 정을 뗐다. 개중에 열심히 읽어 문리가 제법 나면 『통감절요』 덕분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 노력을 다른 경전에 나눠 고르게 썼다면 그 보람과 효과가 얼마나 컸을지는 아무도 생각지 않는다.


<다산어록청상> 129쪽, 정민, 푸르메

  우리나라에서는 천하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추앙하는 학문이, 정작 세상에서는, 심지어는 그 학문이 시작된 곳에서조차 그다지 평가받지 못하는 하찮은 것인 경우가 왕왕 있다. 혹은 세상 모두가 높게 쳐 주는 사람도,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여기까지는 그저 역설적인 상황으로 여기면 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자신이 따르는 학문만이 가장 높다고 여겨 실상의 초라함을 가리고 자신을 스스로 높이 떠받들어 주위를 윽박지르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혹은 자신이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은 곧 자신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것이라 으스대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이는 천하고 부끄러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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