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부족 시에 굶주림으로 인한 소요가 일어났는데 이러한 소요는 다시 공포를 불러일으키거나 강화시켰다. 민중들은 자연재해가 그들이 겪는 빈곤의 유일한 원인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왜 풍요로운 시기에 곡물을 예비용으로 비축해두지 않았다는 말인가? 부자들 - 지주들과 차지농들 - 이 상인들과 담합하고 또 유력자들에게 항상 우호적이었던 대신들과 국왕 관리들의 공모 하에 잉여곡물을 유리한 가격으로 팔기 위해서 외국에 수출했던 것이 아닌가? 밀의 경작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빵 가격이 비싸야 하며 또 그 결과 곡물부족 사태로부터 벗어날 것이며 모두에게 사정이 좋아질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을 때 민중들은 코웃음을 쳤다. 일반의 이익이 희생을 요구한다면 왜 가난한 사람들만 그 부담을 져야 하는가? 빈민들의 빈곤을 심화시키는 그러한 정책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증대시킬 따름이다. 따라서 진보는 가난한 자들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지 않을까? 18세기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그렇다고 말했다(오늘날에도 공언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은 결코 그렇게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1789년에 그들은 자신들과 아이들이 굶어죽을 수는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만약 정부가 빵 가격의 인상을 방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면 정부는 임금도 마땅히 올려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자들로 하여금 빈민들을 먹여 살리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가난한 자들은 들고일어나서 복수를 할 것이었다.


<1789년의 대공포> 51쪽, 조르주 르페브르, 까치

  계층이 가지고 있는 시각의 차이는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 아니, 그 시각의 차이 때문에 계층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위 '높으신 분들의 말씀'이라고 하는 관용구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이유는 이 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합리적인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봤을 때, 현상이 내포한 문제점을 바로 찾아내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현상의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 해결책이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소리인 경우가 많다. 좋게 받아들인다 해도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고 여겨지거나, 나쁜 경우 '자신들을 죽이고 끼리끼리만 살려고 하는 수작'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괴리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것일까? 둘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어느 한 쪽, 혹은 양쪽 모두의 분노로 커다란 충돌을 겪는 것 밖에는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대화로는 갈등을 해소할 수 없는 것인가?
  세계화의 요소 중 하나인 자유무역에 대해서, '스톨퍼-사무엘슨 정리(Stolper-Samuelson Theorem)'라는 것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정리는 자유무역이 사회후생의 증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결국 누군가의 후생, 간단히 말해서 이익이 줄어들게 되는데, 그렇다면 누가 그러한 손해를 보게 되는가? 그리고 그 손해를 어떻게 납득시키고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가? 위 글과 함께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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