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적어도 이런 종류의 일반상식 문제에서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을 게 없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문제풀이 능력은 비슷했다. 그러나 집단에 속하면서 참가자들의 믿음은 부풀려졌다. 정답률은 좋아지지 않고 대신 자신감만 높아진 것이다! 더욱이 둘 다 자신감이 낮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자신감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이 집단의 정답률은 그대로였는데도 서로를 북돋아 11퍼센트 향상된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 실험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야기한 그루지야 정부의 대담한 결정이 어느 한 개인의 자만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 각자는 자신감이 낮았을지도 모르고 아마 혼자였다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면서 이들은 실제로 위험하고 불확실한 조치가 성공하리라고 믿을 정도로 자신감이 팽창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156쪽,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먼스, 김영사

  <머피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다 보면 위원회라는 것이 얼마나 무능한 것인가에 대한 농담이 상당히 많이 나온다. 우리는 혼자서는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단을 이루어 생활하고, 집단의 '합리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가장 정확한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그러나 집단의 논의는, 때로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만큼 상황을 악화시키고 진실과 전혀 동떨어진 결론을 공유하도록 결론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PD수첩의 방송을 놓고 벌어진 지지자들(어쩌면 대다수의 국민들)의 비난 같은 경우를 예시로 들 수 있겠다.
  내가 속한 집단이 언제나 옳기를 바라는가?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는 집단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지를 계속 보아오고 있다. 이는 좌와 우, 무식과 유식, 국내와 국외, 나와 너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과오이다. 내가 속한 집단이 정의라고 믿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의이기 때문에 언제나 옳다고 믿으면 안 된다.
  집단을 향한 날카로운 지적은 무척 아프지만, 그 지적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 명의 입은 호랑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호랑이는 대체 말 너머 어디에 실재하고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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