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초목을 심어 꽃 한 송이를 보려면 드는 품이 만만치 않다. 잘 심어 뿌리를 안정시키고, 땅에서 양분을 끌어올려 가지와 잎을 틔운다. 가지도 쳐주고 거름도 주며, 때로 버팀목도 세워주어야 한다. 꽃은 그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바른 마음과 도타운 행실은 초목의 뿌리요 줄기다. 이것이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고전을 익히고 견문을 넓히는 것은 뿌리를 통해 줄기로 양분을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가지 끝까지 양분이 전달되어야 꽃망울이 부퍼서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 문장은 바로 이렇게 해서 피워낸 꽃송이다. 바탕 공부 없이 꽃만 피우려 들지 마라. 세상에서 가장 천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 안된 글쟁이다.


<다산어록청상> 159쪽, 정민, 푸르메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때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있다. 그 사람이 남긴 작품은 정말로 좋은데, 그 사람 자체는 그야말로 볼 것 없는 추물인 경우가 그러하다. 차마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행적과, 입에 담을 수밖에 없는 뛰어난 작품의 대비는 역설적이다.
  그러나 징그러운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며, 미남미녀가 죽은 뒤 아홉 추한 모습을 보이며 사라진다. 미와 추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미에서 추가 나오기도 하고 추에서 미가 나오기도 한다. 천한 것으로 아름다움을 만들 수도 있고, 아름다움이 천박함을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 천한 것이 따로 있으니, 예술을 한다는 걸 간판으로 걸고 자신의 추한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사람이 그것이다. 예술이 자신의 악취나는 행위의 근본이 된다는 이야기를 보고 들으면, 절로 코를 쥐고 피하고 싶어진다. 대체 이는 어떤 악취이기에 소리와 모습조차 구린내가 난단 말인가?
  단지 이러한 행동을 보면서, 자신이 그렇게 해서는 안되겠다는 반면교사를 삼아 열심히 정진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 행동을 피하고 바른 길로 가겠다 다짐하여 자신을 갈고 닦으며 아름다움을 피우기를 다짐하여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구린내나는 자들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이 길러지게 되는 셈이니, 이는 좋은 현상인 것인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어찌 예술에만 한정되는 이야기이겠는가? 세상의 모습을 보며, 단지 안타까운 심정을 가슴에 담아둘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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