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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속의 검은항아리
김소진 지음 / 강 / 1997년 5월
평점 :
절판
「눈 속의 검은 항아리」를 겉으로 들여다보면 그것에는, 어린 시절에 각인된 심리적 외상이 세월의 간극을 건너 해소되는 여정이 차분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황폐했던 삶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일이 해방과 치유의 기쁨보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적요로 다가오는 모습도 읽어낼 수 있다. 이런 류의 이야기거리가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주목해 볼만 한 것은 김소진이 이러한 모습을 그려내는 매개로 똥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자신이 살았던 산동네를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되는 <눈 속의 검은 항아리>의 '나'에게 똥 혹은 변소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실존을 확인하는 곳이며, 다시 돌아가고자 꿈꾸는 곳인 것이다. 그에게 변소는 잃어버린 것을 상기시켜 주는 슬픔의 여운을 가지고 있는 곳이며, 삶이란 이 변소를 이해하는 과정과 일치한다.
일종의 성장 소설로도 무리없는 「눈 속의 검은 항아리」는 아홉 가구가 함께 쓰던 변소를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꼭 통과를 해야 하는 일종의 제단으로 상정하고 있다. 밤이면 새로 얻어온 젊은 마누라와 앓는 소리를 내고 변소가 떠나갈 듯 소피를 보고 나오던 현정이 아버지와 한밤중에 오줌을 누고 오다가 김치 단지에 금을 낸 사건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가난과 성과 죄의식에 눈을 뜨게 만드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 이것은 사건의 마지막 부분부터 더듬어 보면 좀더 선명히 알 수가 있는데, 변소통 쪽에 세워 놓은 눈사람이 결국 그의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 더러움과 죄의식의 상징인 것이다.
어머니는 자신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난초 무늬 사기 요강에 대한 엄청난 터부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화자에게 강요한다. 즉 어머니는 요강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동티가 난다고 해서 설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아예 요강을 쓰지 못하도록 한다. 나박김치 국물을 먹어댄 탓에 오줌이 지린 <나>는 한밤중에 변소를 가야만 했고, 변소에서 오줌을 누고 나오다가 그만 욕쟁이 할머니의 김치 단지에 금을 가게 만든다. 생각 끝에 <나>는, 깨진 항아리 주변에 눈을 쌓아 눈사람을 만들어서 그것을 감춘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은, 먹으면 배설을 해야 하는 지극히 단순한 욕망의 순리와 그 욕망에 따르는 절제와 금기의 문제이다. 모든 욕망에는 그에 대응하는 절제와 금기가 따르게 마련인데 절제와 금기에 대한 인식은 성장의 한 과정이기도 하다. 사기 요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에도, 오줌을 눌 수 있는 때와 장소도 절제와 금기는 따르고, 결국 단지에 난 금은 이러한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만들어 낸 균열인 셈이다.
어린 시절을 보낸 미아리 산동네를 찾아가는 길은 그 눈사람 안에 가리어 있던 깨진 항아리를 찾아가는 길이며, 그 옆에 있던 변소를 새롭게 발견하러 가는 길이다. 그리하여 폐허가 된 집에서 한 무더기의 똥을 누고 나오는 행위, 구린내가 진동하는 깨진 항아리 속에서의 똥누기는, 포크레인에 의해 깎여 사라질 지난 시절을 기억하며 마지막으로 치르는 축복의 의례와도 같은 것이다.
그곳에는 가난과 욕망과 그로인한 상처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꿈틀거리건 생명의 움직임이 있다. 그는 똥을 남기고 또다른 과거의 상징인 아버지의 영정을 남겨 두고 돌아온다. 결국 똥누러 간 셈이 되어버린 그의 방문길은 과거로 되돌아갔다가 다시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 김소진에게 있어 똥은 비루한 현실과 자아를 확인시켜 주는 동시에 삶의 원천적인 생명력을 확인시켜 주는 매체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