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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정해종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이 삶의 반영이라는 명제는 더이상 가치명제로서 그 실효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졌으며 우리 시대의 서정시는 더 이상 이 시대의 성감대를 자극할 수 없어 보인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가히 파시스트적이라할만큼 가속적이고, 팽창하는 자본주의의 욕망은 끝없는 자기증식을 되풀이하는 현실 속에서 정해종의 시는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당당한 일탈을 감행하지도 못하는 전형적인 룸펜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기력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음주운전이었다 / 객기 반 취기 반으로 무작정 달려온 길'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사는 게 다 기적이'라며 '떠밀려 나온 세상의, 곡예처럼 아슬아슬한' 일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가 원하는 거리는 세상과의 진정한 화해나 타협의 지점이 아니라 자기 방기의 무기력한 도피적 거리이다.
'빈 구루마 같은 생이 눈물겹도록 텅 빈 한 순간 / 세상을 베고 잠시 잠이 들었을 뿐'인 시인이 유지하고자하는 간격은 심미적 거리가 아니며 냉정하게 말할 때 관찰자적 거리도 아니며 단지 무기력한 도태의 거리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미 결정되어버리진 것들이며,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이며 그것은 심지어 연애의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不通은 不和이고 不在이다, 처음부터 不通이었으므로'라고. 이렇게 시인에게 삶은 우울하고 애증으로 얼룩져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삶을 비극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이미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그의 시는 심미적 거리를 담보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는 모습들을 시편 곳곳에서 들키고 있다.
그의 시에서 참신한 시적 개성이라든가 발랄한 의욕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는 90년대의 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젊은 시인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파악하는 방법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표현하는 방법의 새로움에 대해 무지하고 둔감하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의 진정한 의미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에 포착되지 않는 삶의 미세한 틈새와 결들을 일깨워주고 관습과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감추어지고 억압된 진실을 드러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가능성을 확장시키는데 있다고 본다면 그의 시는 독자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발적인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삶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대신 변명 같은 몇가지의 낡은 담론에 기댄 시들은 모두 삶의 변두리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스스로에게 치열하지 못함에 대한 변명이다. 그의 시에서 오히려 설익은 치기나 벼랑 끝으로 몰린 절망을 읽을 수 있었다면 그 울림의 폭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긴 하지만 정해종 시의 미덕은 이러한 면에서 드러난다. 그가 유지하고 깊은 그 거리에서만 체득될 수 있는 미학.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죽지 않겠다는 것이다 / 삶을 포기한 지 오래지만, 삶을 포기했다는 것도 / 그러니까 포기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 남아서 계속 시를 쓸 것이다. 그게 그의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