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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이동하 지음 / 세계사 / 1997년 10월
평점 :
품절
작가 이동하의 글에서 우리는 아버지 세대의 글쓰기의 한 모범을 읽을 수 있다. 꼼꼼하고 정확한 문장과 좀처럼 들뜨지 않는 차분한 호흡. 어눌하고 답답해 보이는 촘촘한 문장들의 행간에서 눅눅한 세월을 담아 내는 그의 어투들. 이를테면 '차말로 구신 낮밥 묵는 소리 하네' '세월에 바래듯이 이제는 흡사 곶감 꼭지처럼 오그라든 채 찌들고 메마르고 오종종한 꼴로 거기 남아 있었다' 등은 그의 문장이 맛깔스러우면서도 얼만큼이나 능란한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가 잠시 잊고 제자리를 찾아 주지 못했던 우리말들을 건강하게 살려내고 있는 그의 문장은 그의 글이 지니는 커다란 하나의 힘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단지 문체나 플롯 측면에서 접근해 간다면 그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의 글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과 다름없고, 그 작가와 좀처럼 구별이 가지 않는 그의 분신들이 만들어 내는 감동은 잔잔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그간의 편협한 글읽기에 치중했던 필자에게는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뿌듯함을 안겨 주었다.
IMF라는 험난한 경제적 상황과 가정의 달 5월의 시간적 배경 속에서 읽은 「문 앞에서」는 읽는 이의 시선을 흐려 놓기에 충분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한 때가 틀림없었을 30·40대를 산업화와 민주화의 회오리 속에서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하고 흘려 버려야 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지는 않았다하더래도 어느 자리에서였건, 어떤 방식이었건 그 시대를 견디어 낸 그들이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고도 닫힌 제 집을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늘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동하의 <문 앞에서>가 가슴 깊은 감동을 전해 주는 까닭의 하나는 이처럼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렸거나 아니면 너무 소홀했던 우리의 아버지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가부장적 사회에서 언제나 가정의 중심인 아버지가 사실은, 아버지의 '아버지 집을 떠나온 이래 지금 이 후줄근한 나이에 이르도록' '늘 잠긴 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한다.
나이 먹은 부자간이지만 별로 나눌 만한 얘기도 없어 서로 떨어져 살아가고 있다는 삭막한 의미만을 장거리 전화를 통해 확인하던 이들이 닫힌 문 앞에서 새롭게 만나는 모습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기름때가 끈적끈적한 아버지의 안경을 공들여 닦아 제 것을 벗고 대신 써보고, 목욕탕에서 나이 많은 노인을 등뒤에서 두 팔로 싸안고 가만히 들어올려보는 나이 많은 아들의 모습은 책장을 덮고도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들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감동은 섣불리 표현할 수 없이 막막해져 오는 느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입 바른 소리로 들린다면 무척 서운할 소리지만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워졌다. 이것이 나의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