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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보다 - 불안을 다스리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침묵의 순간들
마크 C. 테일러 지음,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4월
평점 :
왜 저자는 침묵을 듣다가 아니라 침묵을 보다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침묵은 보통 소리에 대한 개념 아닌가? 그런데 침묵을 보다? 이런 질문으로 이 책을 시작했다.
나는 침묵을 좋아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침묵을 좋아했다. 혼자 있을 때, 특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에 그 고요함을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침묵은 나와 상관없는 순간이 되었다. 거리에 들리는 소음들, 그리고 단순히 소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넘쳐나는 기사들, sns의 글들.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검색하고 읽다보면 내 마음 속은 온통 잡다한 이야기들과 정보들로 복잡해졌다. 내면의 평화니, 침묵이니 이런 말들은 책속이나 추억속에나 존재하는 말이었다. 나는 늘 침묵을 그리워했다. 침묵 속에서 누리는 온전한 나의 모습을 늘 갈구했다. 하지만 바쁜 현대사회에서 침묵을 경험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는 책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침묵의 소리를 듣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다. 침묵은 고요함이며 고요함은 침묵이다. 단순히 소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침묵은 모든 소리와 메아리 속에서 울리고 울려 퍼지는 고요함이다."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 말일지라도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구절이다. 모든 소리와 메아리 속에서 울려퍼지는 고요함. 사실 난 그것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각종 소음 속에 나를 읽어버리고 있는 답답함. 침묵은 그 답답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침묵이 어떤 도구나 기술은 아니다. 침묵은 눈을 뜨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그 세계에. 그리고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저자는 컬럼비아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이다. 그렇기에 그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익숙한 사람이며 인간의 역사와 예술을 통해 이 책을 풀어가고 있다. 어쩌면 침묵이라는 주제에 맞는 책을 쓰기에 아주 적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목차를 보았을 때 왜 이런 제목의 목차를 정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전, 부터, 너머, 맞서, 내부에, 사이에, 향하여, 주변에, 함께 등. 이내 그 제목들이 여러 예술가, 작가, 철학자, 신학자들 사이에 그들이 표현한 침묵을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음을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어렵다. 한번에 와닿지 않는다. 철학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있는지, 평소 침묵이라는 주제에 대해 사유하고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매 챕터에 등장하는 개념들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은 빠른 호흡보다는 느린 호흡이 어울리는 책이다. 속도를 늦추고 한 호흡으로 읽은 뒤 또 읽기를 멈추고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챕터 중간마다 ...이라는 챕터도 존재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문구도 마음에 남았다. 그는 "실제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것들이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는 불필요함을 제거하고 고요함을 찾아서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평화와 고요함을 찾았고 거기에서 그동안 깨닫지 못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침묵이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부분에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다.
침묵에 대해 다시 깊은 고민에 빠졌다. 뭔가 엄청난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