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글은 말한다. “언제나 이기는 건 그 애야. 내가 만들어낸 예쁜 괴물”. 자기를 희생한 타인에 대한 대리만족인가? 우리는 인상깊은 누군가에게 항상 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질투 또는 우상. 그 단편적인 사실은 진실을 가린다. 사실, 그 대상에게 늘 이겨왔던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 또는 거울을 볼 수 없는 고독. 아니, 칭찬이 부족한 자아정체성 혼돈인가. 자아성찰의 종점에 도착한 이는 자아정체성 혼돈을 보면서 줏대없는 풋내기란 생각에 빠진다. 그 종점이란 늪에 빠져 자신에 시간•돈•재산•관계 현재를 잃은 거만한 이는 풋내기보다 못하다. 그러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에서, 그 대상에게 늘 이겨왔던 것이다. 『푸시』 표지에 대한 선입견 생각. 편견의 탈피가 어떻게 될지 기대되는, 책.
’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제목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남편이 이승에서 떠나서 고맙다고 말하라는 의미인지, 남편이 황혼에 내 옆에서 떠나 고맙다는 의미인지, 남편이 나의 휴식을 위해서 집안 짐을 싣고 떠나줘서 고맙다는 의미인지. 얼추 3가지로 나뉜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되갈수록 더 솔직하고 정직하며 숨김이 없어야 한다. 거짓된 사이가 쌓여갈수록 지독하게 참기어려운 가식이 뭉치는 관계가 되어버릴 것이다. 첫 번째 의미는 정말 원수 사이 처럼 다가온다. 두 번째 의미는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서양 느낌이다. 세 번째는 흔하게 보이는 일반 가정이다. 과연, 어떤 의미로 쓰여진 제목인지 궁금해진다.
인체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법의인류학자. 그것은 과학수사대와 유골 감정가를 떠오르게 한다. 그 역사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철학으로 통한 죽음에 대한 윤리, 사망 판정에 대한 어려운 논증과 DNA 정보를 얻기 어려운 상황처럼. 흔히, 범죄수사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스릴러 좋아하고 거기에 대한 상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무겁지 않고 간결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다. 보면서 정약용이 수감시절 썼다는 [흠흠신서]가 궁금했다.
어릴 때는 괴담과 호러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로 점점 다가온다는 괴담은 이동하의 [장난감 도시] 책에서 발견했다. 의무교육 시절 처음으로 보았던 공포 영화는 <스크림>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보면서 가운데 자리를 지켰지만 사실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영혼이 다가온다고 전해진다. 그 외 <사탄의 인형>은 인형에 대한 두려움을 주었다. 쳐키를 보고난 후로 인형이 있으면 무시하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공간에서 피해야할 물건이 되었다. 한국 괴담으로 유명한 <여고괴담>은 밤에 학교는 가는 곳이 아니라고 알려주었다. 걷다가 그 층 불이 꺼진 경험이 있다면 가슴이 철렁 가라앉는 긴박한 두근거림을 이해할 것이다. 이처럼 괴담과 호러는 사람의 생존 본능에 대한 느낌을 위험없이 일러주었다. 그래서 좋아했던거 같다. 요즘 와서 느낀 점은 공포는 사운드와 시각 효과로 관점이 많이 현실적으로 다가오는지 과거 같은 무서움이 흩어졌다. 월급 받아 내 집 마련이 현실이다.“다른 국가 배경 공간을 알고 우리 국가를 생각하는 시간. 지난 시간에 대한 역사 사건을 회상한다.”
관조.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 욕망에서 벗어난 아름다움. 심미적 관조. 쇼펜 하우어의 사진을 보면 주름이 많다. 세상 모든 고민과 고뇌를 전부 짊어진 듯한 얼굴. 그 얼굴은 타인의 악과 욕망에 대한 공감인가 타협인가 그런 불혹의 모습으로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고 본인 스스로 여성론을 쓴 것일까. 얇고 넓은 지식으로 볼 때. 본인 생각으로 국가와 정치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뜻하는 대로 살았을 것 같다. 시는 서정시와 서사시로 나뉜다. 서정시는 작가의 내면의 정수. 서사시는 인물 전개의 역사. 서정시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게 공감하는 점을 보인다. 서사시는 인간 삶의 다양한 모습과 사건을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이데아를 표현한다고 알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