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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튼
케이트 모튼 지음, 문희경 옮김 / 지니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천천히 고른숨을 내쉬듯 막힘없이 일정하게 읽어내려간 책 이었다. 일주일간 이 책과 함께하며 참 행복했다. 개인적으로 영국을 배경으로한 18세기에서 19세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의 영국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있어 내내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그들 모습에 행복하고 즐거웠다. 책의 내용은 아흔이 훌쩍넘은 그레이스가 영화로 제작되어지는 리버튼에서의 일들을 회상하며 들려주고있다. 어린소녀였던 그레이스는 자신의 엄마가 하녀로 일했던 리버튼에 자신또한 하녀의 신분으로 들어가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녀가 그곳에서 듣고 격었던 무수히 많은 날들이 어찌나 생생하게 와 닿던지 정말로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져도 참 근사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린나이에 일을 시작한 그레이스는 매일같이 꾸지람을 들으며 동분서주하게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유아실에서 만난 눈부시게 어여쁜 소년소녀들이 그레이스의 눈과 마음에 와 박혔다. 리버튼 저택의 도련님과 아가씨들이었다. 특히 그레이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으니 첫째딸 해너였다. 그레이스는 그 후 어떻게 해서든 그들곁에서 가까이 머물길 원했고 전쟁이 터지면서 고요한 리버튼 저택에까지 그 파장이 밀려와 죽음이 난무하게 되면서 그레이스도 해너와 더욱 가까워질 계기가 생기게된다. 해너는 좀 더 넒은 세상에 대한 갈망으로 사랑없는 결혼을 선택하고 그레이스를 자신의 시중드는 하녀로 데려가면서 런던에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리버튼에서의 생활이 눈부신 햇살과도같은 포근한 아름다움 이었다면, 런던생활은 곧 죽음과 어둠만이 뒤엉킨 비극의 시작 이었다. 해너의 여동생인 사고뭉치 에멀린을 런던저택에서 돌보게되면서 자매의 처절한 운명도 성큼 앞으로 다가온다.
오래전 헤어진 오빠의 친구 로비헌터가 등장하고 전쟁터에서죽은 오빠의 유품을 건네받은 해너는 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시인이된 그와 헤너사이에 만남이 잦아지면서 우울뿐이었던 런던생활에서 조금이나마 해너의 숨통을 틔어주게된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를 의심하는 눈들이 생기게되고 여기에 에멀린이 엮이면서 점점 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게된다. 다시 리버튼으로 돌아온 해너는 근사하고 화려한 사교파티를 열고 그 날 자신의 새로운 미래에대한 계획을 세우지만 로비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일어나면서 두 자매의 운명도 같이 끝을 맞게된다. 로비의 죽음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고 세상엔 철저하게 봉쇠당했지만 단 한사람, 그레이스만이 진실을 아는 유일한 생존자가되었다.
죽음을 코앞에두고있는 그레이스는 작가인 손자에게 들려주기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하는데, 그 고백같은 이야기가 나로 하여금 깊은 감동과 끝없는 여운으로 물들게 만들었다. 한세기동안 벌어진 끔찍하고도 비극적이게 파란만장한 이야기 이건만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웅장한 리버튼이라는 대 저택이 품고있는 그 무수한 이야가 고스란히 내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마지막장을 덮으며 해너와 로비의 사랑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까지 느껴지는 순간 이었다. 그 순간엔 내가 그레이스가되어 그녀의 행동을 자책하고 그 편지를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해너가 그녀에게남긴 마지막 편지가 뭉글하게 다가왔다. 670페이지가 넘는 기나긴 이야기 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흐트러짐없는 이야기속에서 참으로 즐겁고 가슴아팠다. 해너와 그레이스의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인연이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그들이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