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이라는 여자가 등장하면서부터 불안했다. 설마, 내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랐지만, 남자와 여자는 만난 지 하루 만에 '사랑'을 이야기했다. '님'과 '남'은 점 하나 차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무진을 떠나고 싶었던 여자에게 서울 냄새 나는 남자는 자신의 탈출을 도와줄 구명 보트에 지나지 않는다. 남자에게 여자는 무엇이었을까. 성악을 공부한 음악 선생님이 부르는 '목포의 눈물'에는 작부들이 부르는 노래같은 꺾임과 그 특유의 청승맞음이 없었다.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향하여 이상스레 정욕이 끓어오른다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남자에게 무진은 '일탈'을 꿈꾸게 하는 곳이었다. 뒤죽박죽 엉뚱한 공상이 가능한 곳이었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무진에서만큼은 아무런 부끄럼 없이, 거침없이 해내곤 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어쩌고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생각들이 밖에서 제멋대로 이루어진 뒤 남자의 머릿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듯했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 소설은 무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시작한다. 또 무진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끝난다. 무진으로 들어갈 때도, 무진에서 나올 때도 버스는 덜컹거린다. 우리의 인생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부딪친다. 그 나약함을 들키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자가 믿는 것은 무진의 안개였는지도 모르겠다. 정의롭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가릴 수 있는.
1960년 대, 한국 문학계에 김승옥이라는 청년이 등장했을 때 평단은 그를 두고 '감수성의 혁명'이라 불렀다. 김승옥은 최초의 한글 세대로 한글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현대적 문체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명사와 형용사의 신선한 결합,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단락 전체를 관통하는 쓸쓸하면서도 매혹적인 호흡. 김승옥의 문장을 손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작가가 단어를 고르고 배치할 때 느꼈을 짜릿한 '창작의 순간'과 심장 박동을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정중한 독서법인 필사의 유익함이다.
나만의 필사 공책이 있다. 책을 읽다가 도저히 따라 쓰지 않고는, 남겨두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문장을 만날 때 보물을 묻어두듯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곤 한다. 그것을 오래 묵혔다 어느 날 꺼내 보면 예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더해질 때가 있다. 아마 내 삶의 무게만큼이겠지. 50대가 되어 읽을 <무진기행>이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