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 강태공으로 알아보는 천하를 낚는 삶의 태도 동양철학전집 고전보감 시리즈 2
강태공 지음 / PHILO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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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호수. 70대 노인. 바늘 없는 낚싯대.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는, 제대로 빛을 내본 적도 없는 그를 찾아온 문왕은 수레에서 내려 예를 갖추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겠지만 초야의 늙은이는 굽실거리지도,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구구절절 읊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묻는 군주에게 묻는 만큼만 답했다.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문왕은 그날 강가에서 노인과 대화를 나눈 직후 그를 자신의 수레에 나란히 태우고 왕실로 돌아갔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군주가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늙은이를 자신의 수레에 동승시킨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우다.

운명이 아니라 준비된 만남이었다. 그는 운이 좋아 왕을 만난 노인이 아니다.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만난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9쪽

강태공. 흔히 세월을 낚는 이로 비유되는 그는 어느 날 사냥을 핑계로 위수(渭水)까지 찾아온 문왕과 조우한다. 모르는 이는 이 만남을 하늘이 점지한 신비로운 운명이라 하지만 실상은 두 사람 모두에게 철저히 준비된 순간이었다. 한 사내는 칠십 년동안 자신의 칼이 녹슬지 않게 닦아 왔고, 다른 사내는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왔다.

사실 강태공은 상나라의 폭군 주왕 밑에서 잠시 관직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 조직이 구제 불능임을 간파했고, 주저 없이 등을 돌렸다. 이미 쏟은 정성과 세월이 아까워 그 자리를 맴도는 심리, 어긋난 관계, 끝난 꿈에 매여 있음을 가리키는 미련은 그의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강태공은 침몰하는 배에서는 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혈혈단신이 된 그는 다시 강가로 돌아가 빈 낚싯대를 드리웠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분명 뒷걸음질이었지만 그의 방향성으로 보면 다음 판을 위한 정확한 자리 잡기였다. 그에게 거절은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자기 선언이었던 것이다.

강태공이 단호하게 끊어낸 것은 실패한 과거가 아니라, 그 과거를 끝없이 되돌아보려는 마음의 관성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앞에 서성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51쪽

이 책의 다섯 번째 소제목은 이렇다.

'헛된 가정을 버려야 진짜 삶이 시작된다.'

이 문장을 보자마자 문해력이고 뭐고, '그럼 이혼?'이라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는 것을 막을 사이가 없었다.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하더라도 이 분과 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약에'는 현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 뿐이다.

책에서 말하듯 이와 같은 헛된 가정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것이 결코 검증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그 길로 갔더라면 더 행복했을 것이라는 가정에 반박할 근거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장을 끝없이 되뇌고, 끝없이 부풀린다. 가지 않은 길은 늘 더 환하고, 만나지 않은 사람은 늘 더 따뜻하며, 잡지 못한 기회는 늘 더 결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가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선택한 길 위에서 또 다른 가정을 만들어 내고 말 것이라는 불편한 사실을.

후회와 가정은 다르다. 후회는 지난 선택에 대한 평가고, 가정은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망상이다. 따라서 후회는 다음 선택에 대한 자료가 되지만, 가정은 다음 선택을 지연시킨다.

긴 세월 자신만의 방향을 향해 나아간 그에 관한 글을 읽고 얻은 위로는 '냉정함'이었다. 천하의 강태공이라지만 어찌 후회와 가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겠나. 하지만 그는 엎질러진 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 두 손으로 그 물을 퍼담아 넣으려는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차갑게 말했다. 빈 그릇을 들고 일어나 저 쪽 우물로 가라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명징한 직시가 어떤 따뜻한 위로보다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련을 베어 내는 책이다.

어느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헐리우드 배우인 덴젤 워싱턴은 "Fall forward!"라고 말했다. 동지여, 그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그 사람은 이미 떠났다.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끝이라고, 끝!

정신차려, 이 친구야! 정신 차려,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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