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기록법 - 평범한 생각을 가장 강력한 지적 자산으로 바꾸는 힘
조윤제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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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8년이다. 알다시피 정약용은 또 다른 귀양지였던 탐라(지금의 제주)로 가는 길목이었던 탐진(지금의 강진)에서 무려 18년을 보냈다. 세상을 원망하며 미쳤다 살아났다를 대여섯 번 해도 남아도는 시간이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다산을 버티게 한 것은 '기록'이었다.

이것이 없어지지 않으면, 혹 긴요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산의 기록법, 16쪽, <자찬묘지명>

1818년, 18년의 귀양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남양주로 돌아간 정약용은 스스로 자신의 묘지명을 썼다. 묘지명이란 한 사람이 죽은 후 가까운 사람이 그의 삶을 기리고 행적을 남기기 위해 쓰는 글이기에 다산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다산이 학문의 성과는 물론 자기 삶의 대해서도 모두 기록으로 남긴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거의 책 한 권에 달하는 <자찬묘지명>에는 다산의 삶의 정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오랜 귀양 끝에 그리던 집에 돌아와 지난 생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며 쓴 묘지명이기에 더욱 뜻깊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찬묘지명> 뿐 아니라 다산의 글은 유교 경전에 충실하면서도 200년 전의 구닥다리가 아니라 오늘날의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글이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당대 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다산의 글 안에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 고난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기회로 삼는 법, 생각과 성찰과 지식을 모아 하나의 지적 결과물로 남길 수 있는 길이 있다.

다산은 조선 후기 가장 뛰어난 유학자이지만 또한 실용을 중시하는 실학자였다. 모름지기 기록은 실제 삶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현실을 살아갈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다고 보았다.

다산의 기록법, 19쪽

"너 T니?"

요즘이었으면 이런 핀잔을 들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산에게 기록이란 '가치 있는 삶'의 다른 이름이었다. 때문에 그는 고된 귀양 생활 속에서도 사람들을 이롭게 할 만한 글을 쓰는데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 기록물들에는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그를 존경하며 그의 글을 읽는 이유이다.

다섯 번째에는 하루를 묵힌 뒤 읽는다. 시간은 가장 정직한 편집자여서, 어제의 내가 보지 못한 허물을 오늘의 나에게 보여준다. 다산이 귀양 초기의 울분 속에서 쓴 <매씨서평>을 세월이 흐른 뒤 다시 읽고 감정이 지나쳤음을 깨달을 수 있었듯, 시간을 두고 글을 다시 살피는 건 좋은 퇴고 방법이다.

다산의 기록법, 124쪽

<다산의 기록법>에는 누구나 따라해 볼 수 있는 다산의 기록법이 몇 가지 소개돼 있다. 가장 쉽게 기록을 시작하는 3단계, 기록을 책으로 만드는 3단계, 나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3단계, 다음 세대로 기록을 전송하는 3단계다. 그 중 기록을 책으로 만드는 3단계 중 3단계인 퇴고에 관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퇴고의 첫 단계는 소리내어 읽기다. 눈으로는 매끄럽던 읽히던 문장이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부자연스럽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두 번째 단계인 독자의 눈으로 읽는 것과도 같은 맥락인데, 몇 달 혹은 몇 년을 내가 쓴 글을 들여다 보면 그 안에 갇히는 모양이 된다. 때문에 밖에서 안을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세 번째는 덜어내며 읽기다. 누군가 '초고는 버리려고 쓴다'는 말을 했듯 수정의 수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 글이 탄생한다. 그 과정에서 주로 할 일은 더하기보다 빼기다. 없어도 뜻이 통하는 문장, 반복해서 말한 이야기, 의미 없이 단순히 자랑을 위해 넣은 인용구 같은 것들은 과감히 덜어낸다.

네 번째는 단어를 바꿔 보며 읽는 것이다. 글의 가장 기본 단위인 단어는 적확한 자리에 정확한 방식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쓸모를 얻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입에 익어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사용해야 한다.

위에 인용한 다섯 번째 단계까지 마친 뒤에는 완성된 글을 가장 보이고 싶은 사람에게 최종 확인을 부탁한다. 정약용은 책 한 권을 완성할 때마다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형, 정약전에게 보내 냉정한 평가를 요청했다. 그때마다 겸손한 태도로 아낌없이 지적해 달라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다산의 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고,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에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실질적인 물음에 대한 유용한 대답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매일 기록하며 살고 있다. 잠들기 전 내일 해야 할 일을 적고, 갑자기 생긴 일정을 추가하고, 아이들에게 어른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는 편지를 쓴다. 도대체 난 왜 이럴까 하며 눈물 자국 위에 흐린 글씨를 쓰기도 한다. 만약 그것이 훗날 하나의 기록물로 남겨진다면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고질라처럼 불을 뿜어댄 한 괴물이 아닌 읽고 쓰는 것을 사랑했던 한 사람, F와 T가 시의적절하게 잘 발현됐던 사람으로 회자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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