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공부의 종말 - 우리가 공부라 믿는 것은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가
아나 로레나 파브레가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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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첫째 아이의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공부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지금 나는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 책도 어떤 정보를 얻거나 영적 성장을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재미있어서 읽는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공부하는 것도 책 읽는 것도 진도가 나가지 않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한참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공부'를 해야 했던 고등학생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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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말해 뭐 해. 당연히 재미없어서였다. 국어의 고전 시가도, 수학의 함수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정해준 일과대로 과학실 갔다 음악실 갔다, 주는 대로 점심밥을 먹고 또 일방적인 지식 전달을 받아 적었던 시간들. 결국 산 꼭대기에 있는 고등학교를 3년 동안 오르락 내리락했지만 머리와 가슴에 남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당시 내 '실력'만큼의 수능 점수를 받았지만 목적과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 않았다. 그저 마땅한 결과려니 하고 정처없는 20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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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세계에서 압도적인 보상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주제에 광적으로 몰두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끊임없이 갈아타기만 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복잡한 문제의 핵심에 결코 가닿지 못한다.

가짜 공부의 종말,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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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짜 공부는 30대 초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시작되었다. 일단 '배우자'라는 사람에 대한 공부가 절실했다. 사촌 동생도 돌본 적 없는 나로서 새로운 세상인 육아가 그 다음이었다. 그렇게 10년을 두문불출하며 아내와 엄마로 살았다. 인생 공부 제대로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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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제 발로 걸어 다니고, 제 손으로 밥을 떠 먹고, 화장실 뒷처리까지 하게 되자 새로운 공부가 필요했다. 주제는 다름 아닌 '나'였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 게임'과 '사회 게임'에 익숙했던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였다. AI에게 물어보면 1초도 안 걸려서 알 수 있는 지식을 마치 절대적 진리인 듯 가르치질 않나,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 별로 일정을 짜서 통보하질 않나, 무언가를 좋아하고, 더 좋아할 수 있는 몰입을 시간에 끼어들어 방해하질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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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학교와 사회에서 어떻게 '교육' 받았는지. 그 교육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변화는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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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는 본능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평범한 인물이 갈등을 마주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서서 역경을 극복하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우러러볼 영웅과 달성해야 할 성취를 눈앞에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지식에 현실성과 맥락을 부여하기에, 그 지식은 우리 뇌리에 깊이 남는다.

가짜 공부의 종말, 108쪽

불행히도 나 역시 아직 '공부'라고 하면 문제를 읽고 정답을 찾는 과정을 떠올린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그랬다. 밀린 수학, 사회 문제집을 풀어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책을 읽고 있는 첫째 아이를 보며 일단은 기다렸다. 하지만 경험상 아이는 진짜 책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거나 일부러 모른 척 하거나였다. 중학생이 되면 지금보다 책 읽을 시간이 더 없어진다는데 지금이라도 더 읽게 놔두자 하면서도, 그럼 '공부'는 언제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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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제시한 훌륭한 교사의 예는 나의 이 불안을 조금 잠재워준다. 학창 시절 인기 있던 선생님들을 떠올려 보자. 여러 부류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딴 이야기를 잘 해주는 분들이었다. 첫사랑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수업과는 전혀 상관 없는 자신의 실수담과 꿈 얘기들. 직접 경험한 것이나 뉴스나 역사 속 이야기도 좋았다. 뭐든 공부만 아니면 다 좋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런 이야기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다. 때때로 그것들은 삶의 고난과 마주쳤을 때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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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공부의 종말>에서 말하듯 아이들의 공부는 모방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따라 가상 놀이를 만들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 책 속 인물을 흉내낸다. 그리고 이야기 속에 친구나 가족, 직접 경험한 일을 포함시켜 서사를 확장해 나간다. 이 과정이야 말로 아이들이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바람직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진짜 공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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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한 사람의 문제의식과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다.

<가짜 공부의 종말>은 현 상황을 만들어낸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학교가 왜 아이들의 배움과 멀어졌는지 날카롭게 진단하는 동시에, 부모와 교사가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낡은 교육 시스템 안에서도 우리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믿고, 배움은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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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교육은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안에 있는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 했다. 결심했다. 아이가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나는 나의 공부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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