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십 대를 위한 『논어』
판덩 지음, 하은지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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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질문인가요?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님 말씀을 믿어도 되냐고요? 차라리 놀고 와서 밥 먹고, 좀 쉬었다가 숙제하겠다는 저희 아이들 말을 믿는 게 낫겠네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절판되지 않을 책들이 있다. <양치기 소년>과 <논어>도 그렇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거짓말을 하다 꼬리가 밟혀 된통 당하는 경험을 하기 마련이므로 아이들에게 우화를 통해 가르침을 주기 위해 사라지지 않을 책이다. 후자는 어떻게 하면 <양치기 소년>같이 후회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을지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공자, 그는 누구이기에 부모 세대를 '꼰대'라 부르며 아이팟으로 귀를 막는 '요즘 애들'마저 <논어>를 읽는 것일까?

"이미 여기저기서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 널렸는데 뭐 하러 수천 년 전 '꼰대'의 고리타분한 말까지 들어?"

"일부러 신격화한 가상의 인물 아니야?"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8쪽

'2500년 전 꼰대' 공자. 그의 잔소리인 <논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질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공자는 '귀여운 노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유머러스했으며 다정했다. '나 때는 말이야'로 주름잡는 꽉 막힌 옛날 사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어른이었다.

그의 매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공자는 먹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탐하지 않았다. 다소 까다롭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플레이팅'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음식의 맛 뿐 아니라 식감도 중요시했고, 우아하고 격식 있는 삶을 추구했다. 독서를 사랑했으며, 석 달 동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음악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과음하지 않았고, 군왕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에 대한 말을 삼가고 예를 다했다.

가난한 백성들을 보면 진심으로 동정했고, 제자들을 교육할 때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가르쳤다. 공자는 학식과 식견이 뛰어난 선생님이자 세상 이치와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어른이었고, 선량하고 푸근한 친구였다. 이런 잔소리꾼을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20쪽

학습(學習, 배울학, 익힐 습)에서 '배움'은 지식이나 정보를 새롭게 습득한다는 의미고, '익힘'은 습득한 내용을 끊임없이 응용하고 시도하며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배움'보다 '익힘'을 가벼이 여기곤 한다. 배우고 나면 '알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익힘의 과정을 소홀히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도대체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날들이 계속된다면 누구라도 지치기 마련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직 결과만을 생각하기보다 과정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하다하다 끝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정상에 도달하는 것 못지 않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딛고 한 단계 올라서는 성취감도 인생의 큰 재미다.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지식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즐기는 자만 못하다.

공부가 즐겁다는 공자의 말을 믿어도 될까, 156쪽

공부 얘기만 할 것 같은 <논어>의 핵심은 뜻밖에도 '즐거움'이다. 공자가 말하는 즐거움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한 것이 아니다.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의 응원도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으며, 굳이 자신을 설득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더 와닿게 말하면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호지자'를 가리켜 '공부하지 않으면 괴로운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들으면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하는 행운아가 되었다. 밤잠 줄여가며, 먹는 시간 아껴가며 책을 읽을 때. 독후감을 쓰기 위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좋아서 읽는 시간. 그 적막함은 내게 '완전함'과 같다.

바꿔 말하면 좋아서 하는 사람은 말릴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도 내 옆에서 줄글책 사이에 만화책을 끼워 놓고 낄낄대는 저 아이들을 공자님이라고 말릴 수 있을까. 뭐라도 읽으니 기특하다! 예쁘다,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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