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네 집은 다둥이 가정이다. 위로 오빠가 셋에 아래로 남동생 하나. 뒤죽박죽, 엉망진창, 달라도 너무 다른 다섯 남매에게 맞추느라 엄마는 심장이 다섯 개인 사람처럼 살아간다. 게다가 한비 엄마의 지나치게 '자애로운' 성품 탓에 한비네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아이들끼리 싸워도 어째서인지 늘 차분하고 밝은 엄마의 태도에 한비는 갈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오신 학교 보안관 할아버지께 <한비자>라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받았다. 책의 두께로 보나 표지에 나와 있는 옛날 옛적 사람의 얼굴로 보나 상이라기보다 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한비는 매일 조금씩 <한비자>를 읽어 가며 그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갔다.
절정은 한비 엄마가 다쳐 일주일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던 기간이었다. 이렇게나 길게 집을 비워본 적이 없었던 한비 엄마는 아이들 걱정에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안절부절못했다. 아빠도 허둥지둥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엄마 간호에 나섰다. 엄마가 있어도 난장판이었던 집은 엄마의 부재에 무법 천지가 되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한비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규칙'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세 오빠들은 까칠해져서 소리를 지르고, 관심없다는 듯 휴대폰에 빠져들고, 온갖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당장 어떻게 될 줄 알았지만 한비네 다섯 남매는 이렇게 저렇게 잘 버티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막내 민기가 혼자 등교 준비를 한다는 거였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오빠들은 잠자기 전에 문단속을 하고,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는 등 집안일을 분담해서 처리했다.
달라진 건 한비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온 엄마는 두 팔을 벌려 오 남매를 끌어안고 훌쩍이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너희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엄마로서 나 자신을 자세히 돌아보게 되었어. 또 너희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깨달은 게 있어. 이제 엄마도 변할 거야."
엄마는 입원해 있는 동안 한비가 추천했던 <한비자>를 읽고 큰 결심을 했다.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오 남매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비 엄마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쐐기를 박았다.
"쉽게 말하면 엄마가 우리 집 왕이 되겠다는 거야. 그것도 아주 힘이 센 왕 말이야. 그래서 우리 집을 제대로, 잘 다스리겠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