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한비자를 만나다 ㅣ 나의 첫 인문고전 10
홍종의 지음, 임미란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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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할만 한데 사람이 어려워."

이직이나 퇴사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다. 직장 상사나 동료, 거래처 직원이나 고객들. 이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로 인한 스트레스나 관계 유지를 위한 에너지 소모는 야근의 피로보다 몇 배 크다.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다. 중국의 학자였던 한비는 전국 시대의 일곱 나라 중 가장 힘이 약했던 한나라에서 태어났다. 시대적 상황도 어려운 데다 왕족이기는 했지만 후궁에게서 태어나 천대를 받았던 개인사까지 더해 말을 심하게 더듬게 되었다. 그로 인해 따돌림을 받으며 자랐지만 한비는 망해 가는 나라가 더욱 걱정스러웠다. 어떻게든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데 힘을 보태고자 공부를 열심히 하고,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글쓰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무려 2300년 동안 사람들이 곁에 두고 읽고 있는 <한비자>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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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관계란 무척 복잡하고 다양해요. 법이 바로 서지 않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끊임없이 싸울 거예요. 그래서 <한비자>에서는 공정하고 질서 있는 세상을 위해 법과 규칙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원칙이 바로 서야 서로 믿고 소통할 수 있다고요.

열 살, 한비자를 만나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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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네 집은 다둥이 가정이다. 위로 오빠가 셋에 아래로 남동생 하나. 뒤죽박죽, 엉망진창, 달라도 너무 다른 다섯 남매에게 맞추느라 엄마는 심장이 다섯 개인 사람처럼 살아간다. 게다가 한비 엄마의 지나치게 '자애로운' 성품 탓에 한비네 집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아이들끼리 싸워도 어째서인지 늘 차분하고 밝은 엄마의 태도에 한비는 갈수록 마음이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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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새로 오신 학교 보안관 할아버지께 <한비자>라는 두툼한 책 한 권을 받았다. 책의 두께로 보나 표지에 나와 있는 옛날 옛적 사람의 얼굴로 보나 상이라기보다 벌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한비는 매일 조금씩 <한비자>를 읽어 가며 그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갔다.

절정은 한비 엄마가 다쳐 일주일 이상 병원에 입원해 있던 기간이었다. 이렇게나 길게 집을 비워본 적이 없었던 한비 엄마는 아이들 걱정에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도 안절부절못했다. 아빠도 허둥지둥 회사에 휴가를 내고 엄마 간호에 나섰다. 엄마가 있어도 난장판이었던 집은 엄마의 부재에 무법 천지가 되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한비는 자기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던 '규칙'의 중요성을 내세웠다. 세 오빠들은 까칠해져서 소리를 지르고, 관심없다는 듯 휴대폰에 빠져들고, 온갖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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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엄마, 아빠가 없으면 당장 어떻게 될 줄 알았지만 한비네 다섯 남매는 이렇게 저렇게 잘 버티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막내 민기가 혼자 등교 준비를 한다는 거였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오빠들은 잠자기 전에 문단속을 하고,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는 등 집안일을 분담해서 처리했다.

달라진 건 한비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온 엄마는 두 팔을 벌려 오 남매를 끌어안고 훌쩍이는 대신 차분한 얼굴로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너희들과 떨어져 있으면서 엄마로서 나 자신을 자세히 돌아보게 되었어. 또 너희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깨달은 게 있어. 이제 엄마도 변할 거야."

엄마는 입원해 있는 동안 한비가 추천했던 <한비자>를 읽고 큰 결심을 했다.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오 남매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비 엄마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쐐기를 박았다.

"쉽게 말하면 엄마가 우리 집 왕이 되겠다는 거야. 그것도 아주 힘이 센 왕 말이야. 그래서 우리 집을 제대로, 잘 다스리겠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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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는 것을 때에 맞춰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이 어렵다.

열 살, 한비자를 만나다, 93쪽

한비 엄마도 오 남매도 물론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엄마가 모든 걸 대신해 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다만 익숙함과 편리함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무렵 한비네 학교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내 집 같은 학교, 가족 같은 우리들' 대신 학교 규칙을 잘 지키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을 지키며 각자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언제까지 철없는 막내일 것 같았던 민기가 자기 할 일은 스스로 해보겠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이자 세 형들도 마지못해 각자의 자리에서 제 할 일을 시작했다.

<한비자>에서 말했듯 바람을 타면 약한 화살도 멀리 가는 법이다. 어렵고 복잡한 사람의 숲에서 헤매지 말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꼭 필요한 책 <한비자>를 읽어 보자. 한 번 읽어도 좋고, 두 번, 세 번 읽으면 더 좋다. 열 살에 만나도 좋고, 스무 살, 마흔 살에 만나도 괜찮다. 언제든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익히면 우리의 인생이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갈 것이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일단 그냥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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