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난 가만히 땅을 딛고 서 있는데 사실은 빙글빙글 돌고 있다니. 나 뿐만 아니라 북극에서 남극까지 지구가 통째로 돌아가고 있다니. 거기다 자전과 공전을 동시에 하고 있다니 갑자기 어질어질해지는 기분이었다.
독일의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내가 느꼈던 기분을 작가답게 나타냈다.
"모든 발견과 사상 중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만큼 인간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둥글고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로 인식되려는 바로 그 순간,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거대한 특권을 포기해야 했다."
인류는 오랫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인간은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는 인간이 특별하다는 믿음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태양 중심설과 지동설은 각각 성경의 해석이라는 종교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관측 증거라는 과학을 대변했다. 천문학의 패러다임이 극적으로 전환된 데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공이 크다. 갈릴레이 위성이라 불리는 목성의 가장 큰 네 개의 위성, 즉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의 발견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 주위를 도는 천체가 직접 관찰된 최초의 사례였기 때문이다.
이후 갈릴레오는 달의 표면과 태양의 흑점을 발견했다. 그에게 태양과 달은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서처럼 완전무결한 천체가 아니었다. 이처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증거들이 쌓여갈수록 격렬한 비판과 논쟁이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가 수많은 천체 중 하나에 불과하고, 성경의 해석과는 달리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하늘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듯 보이는 현상은 단지 시각적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교회는 1616년 태양 중심 우주론이 성경과 모순되는 '이단적인' 이론이라고 공식 선언하기에 이른다.
패색이 짙었다. 갈릴레오는 태양 중심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야 했고, 이후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다 1642년 생을 마쳤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청 과학원의 장기간 조사를 바탕으로, 교회가 갈릴레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2004년에 이르러서야 폴란드 프롬보로크 대성당의 이름 없는 무덤가에서 갈릴레오의 유해가 발굴됐다. 2010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467년 만에 그의 유해는 정식으로 장례 절차를 걸쳐 새 무덤에 안치됐다. 그의 검은 화강암 묘비에는 금빛 태양과 그 둘레를 도는 행성들이 새겨졌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계 모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