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에 관하여 -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판사 프랭크 카프리오 이야기
프랭크 카프리오 지음, 이혜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불쌍해서 좋은가요

아니면 좋아서 불쌍한가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

​

​

오래 전 봤던 어느 드라마의 대사다. 여자의 질문에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엔 불쌍해서 좋았고 지금은 좋아서 불쌍합니다."

​

드라마는 끝났고, 삶은 계속됐다. 여전히 그 연인의 대화가 한 번씩 나를 멍하게 하지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처럼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연민에 관하여>를 통해 평생을 그 불쌍함과 함께 살아온 이를 만났다.

프랭크 카프리오라는 이름보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판사'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 얼굴. 언젠가 나도 우연히 그의 법정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가 세상을 구하는 또 한 명의 영웅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었다.

​

​

​

​

연민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것이다. 연민을 배우기에 늦은 때는 없고, 연민을 실천하기에 늦은 때도 없다. 그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자신에게 이렇게 묻기만 하면 된다. 이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연민에 관하여, 106쪽

​

​

그가 베푸는 연민은 철저히 학습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그의 부모였다.

그의 아버지는 8학년을 마치고 학업 대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우유 배달을 하면서 고객들의 사정을 헤아리며 없는 살림에도 밀린 우유값을 대신 내주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아들의 레슬링 시합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찾아가 응원했다.

저자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저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언젠가 넌 변호사가 될 게다. 너는 말을 잘하니까. 너는 언젠가 변호사가 될 거야.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해라. 우리같이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받지는 말거라. 네게 돈을 줄 부자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날 아버지의 말은 직접적이고 간단했으나 강력했다. 하지만 그날 저자가 자신의 미래를 확신한 결정적인 요인은 자신의 어깨에 얹어진 아버지의 손이었다. 나를 걱정해 주고, 잘 지내길 바라고, 인생의 바다에서 순조롭게 항해하도록 살짝 바람을 넣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저자를 이를 가리켜 다정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 '특권'이라 말했다.

​

저자의 어린 시절은 객관적으로 불행해야 마땅했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고,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온 가족이 오븐 앞에 옹기종기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가까워졌단다. 디즈니 만화에서 볼 법한 동화같은 이야기다.

저자의 어머니 또한 삶을 통해 연민을 가르쳤다. 그녀는 자기를 위해 옷 한 벌 산 적이 없고, 그렇게 좋아하는 복숭아 캔 하나 사지 않았다. 항상 식구들을 우선시했고,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궁핍한 생활 속에서 매주 50센트, 1달러 씩 모아 2,000달러를 모았다. 20년이 걸렸다. 그렇게 모은 돈을 학비가 없어 로스쿨 진학을 미루려는 저자의 손에 쥐어줬다.

저자는 어머니의 고난과 맞바꾼 그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울고, 저자도 울었다.

​

​

​

​

​

​

기억하라. 이 세상이 더 친절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

연민에 관하여, 119쪽

​

​

아버지의 믿음을 거름 삼아 교사가 된 저자는 이후 변호사로서도, 판사로서도 성공했다. 판사 시절 그는 주로 교통 법규 위반을 다루었다. 그의 법정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범칙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았다. 주차 위반 범칙금 30달러를 내면 그날 먹거리를 살 돈이 없었다. 범칙금을 낼 때까지 그들의 차 바퀴에 잠금 장치를 채우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어른들은 일을 할 수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인다고 했다. 저자의 인간 냄새 나는 판결이 영상을 통해 유명해지자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인디애나에 사는 앤지 체서는 최저임금을 받으며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었다. 앤지는 어렵게 모은 돈 20달러를 저자에게 보내며 나보다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저자는 고마움의 표시로 법정에서 앤지의 편지를 읽었고, 그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기부금을 보냈다. 훗날 저자 어머니의 이름을 따 필로메나 기금으로 불리게 된 이 소중한 마음은 어머니가 몸소 보여주었던 연민의 확장이었다.

​

법은 차갑다.

그래서 판단은 인간적이어야 한다.

​

​

좋아서 불쌍한 걸까, 불쌍해서 좋은 걸까.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이게 먼저든 저게 먼저든 아무튼 좋다니까 좋은 거겠지. 서로를 향한 연민이 민들레 홀씨에 실려 온 세상 구석구석 노랗게 꽃 피었으면 참 좋겠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