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마주한 선생님 앞에서 석이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다.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을까요?"
산석은 자신이 둔하고 앞뒤가 꼭 막혀 융통성이 없으며 고지식하다고 이실직고했다. 스스로 발견한 모습인지, 주변에서 툭툭 던진 말을 오래 들어 그런가보다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석이는 자신에 대해 모르는 게 있었다. 단정한 용모에 마음도 깨끗하고 글씨도 제법 반듯해서 글 쓰기에 좋은 자질을 가졌다는 것을. 조심스레 배우고 싶은 마음을 내보이는 모습에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반짝이는 여린 이파리를 볼 때처럼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는 것을.
공부의 시작은 햇볕이 잘 드는 책상에 앉는 것이었다. 정약용이 모셨던 임금 정조도 강조하던 것이었다.
"무릇 사람은 책을 읽고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때때로 책상을 문지르기만 해도 좋다고 했다. 내가 평일에는 책 읽기를 즐기지만, 혹 업무가 많아서 책 읽을 여유가 없을 때에는 일찍이 그 말을 떠올려 책상에 마음을 노닐고 눈을 머물게 하려고 한다."
그날부터 정약용이 내어준 책상은 산석의 세계가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을 따라 쓰고, 책을 읽었으며 책상 곳곳을 가만히 문질러 보았다.
석이보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이 책을 휙휙 읽어가며 빠르게 문장을 익혔다. 다들 일찍이 공부를 끝내고 공차기를 하거나 멱을 감으로 개울로 달려갈 때도 석이는 자신만의 느림과 둔함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하던 공부를 마치고는 했다. 석이의 공부는 '더 많이, 더 빨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산은 그런 석이가 뿌리를 깊게 내리고 천천히 오래오래 자랄 재목이라 생각한다. 꾸준함 역시 재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