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 이 캄캄한 새벽에 끝도 없는 택배 상자와 씨름을 하는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다독였을 것이다. 여름에는 얼음 가득한 커피를,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꿀차를 나눠 마셨을 거라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한정돼 있고, 물량은 늘어나다 보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신경 쓸 틈도, 여력도 없었을 거다.
실제 미술 공부를 위해 상경했던 저자가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며 겪었던 땀 냄새 나는 이야기를 담은 <까대기>. 익히 들어 알다시피 택배 상하차장은 임시적이며 유동적이어서 정착하기 어려운 노동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자신에게 주어진 물품을 나르고 또 나르며 고단한 하루를 버티고 버텨낸다.
주문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도착한 물건을 받아들고 복잡한 감정에 멍해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 물건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거쳤던 그 수많은 손들. 그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신랑이며, 친구이자 이웃이다.
택배 이용을 줄이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나도 살고 너도 같이 살기 위해서는 이미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택배 기사들은 '특수고용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기본적인 노동권 보장은커녕 개인사업자의 책임과 노동자의 의무만 떠안고 있다. 또 대부분 자기 차량으로 배송하기 때문에 차량 유지비, 기름값, 보험료, 통신비, 식대 등 모든 비용을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 배송 중에 사고가 나거나 몸이 아파도, 보상해 줄 고용주가 없다.
그렇다고 개인사업자로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배송 구역은 정해져 있고, 본사 앱의 명령을 따라야 하며, 고객 응대와 서비스 평가도 신경 써야 한다.
이 책은 2019년에 출간되었지만 오늘까지도 열악한 노동 환경은 큰 변화가 없다. 툭하면 들려오는 택배 기사들의 비보에 관계자들에게 변화의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직접 고른 청소년 교양 만화 30>는 단순히 필독서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각 만화를 읽은 뒤 흥미를 확장할 수 있는 다양한 부가 자료를 덧붙여 놓았다. 예를 들면 '택배 기사 막으려고 고양이 도입한 일본 택배 회사, AI 스파이와 같이 일하는 아마존 기사들, 택배는 전쟁터에서 유래됐다?' 같은 기사들과 EBS 극한 직업에서 방영한 택배 상하차 작업 현장에 관한 영상이다. 또 영어 교사로서 저자의 면모를 살려 관련 영문 기사와 논문, 원서, 영상 자료로 '추가 교양 한 스푼'을 마련했다.
아이들이 '만화책만' 보고 있으면 부글부글 끓다가도 그거라도 보니 고맙다 싶을 때가 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만화냐 줄글이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이 최우선이다. 만화도 소설도 좋으니 부디 책과 가까이하며 책장 넘기는 즐거움과 책장을 넘기기 전 잠시 생각하는 즐거움을 알아가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교양은 덤으로 쌓일 테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