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9 : 지구인의 뇌는 알쏭달쏭 타임머신 -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 ㅣ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정재승 기획, 정재은 글, 김현민 그림, 이고은 자문 / 아울북 / 2026년 1월
평점 :


얼마 전 오랫동안 한 번 보자, 조만간 보자 말만 하던 지인을 드디어 만났다. 내가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 알게 된 좋은 인연이었다. 우리 사이에 2년도 12년도 아닌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소리의 길이를 서로 다르게 느끼는 것은 자신의 심장 박동을 기준으로 소리를 판단하기 때문. 예를 들어 같은 소리를 들어도 소리가 지속되는 동안 심장이 두 번만 뛰는 지구인은 소리를 더 짧게, 심장이 네 번 뛰는 지구인은 소리를 더 길게 판단하는 것.
사실 이런 연구가 아니어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무언가에 푹 빠져 정신 차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거나 아무리 못해도 한 시간은 지났겠거니 하고 시계를 봤는데 웬걸, 겨우 30여 분밖에 흐르지 않은 시간을 원망하곤 한다. 이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보자면 지구인들은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순서'를 구분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이 시간 감각의 가장 대표적인 부위가 바로 우리 뇌에 있는 '시간 세포'다.
쥐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시간 세포의 존재를 알게 된 과학자들은 이것이 인간에게도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2개의 단어를 순서대로 읽어 주고, 참가자들이 단어를 쉽게 암기하지 못하도록 짧은 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 그 뒤 앞서 읽어 주었던 단어들을 '순서대로' 최대한 많이 기억하게 하고 그 해마를 관찰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의 시간 세포가 도장을 찍듯이 기억을 구분해 그 순서를 기억해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덕분에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더욱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정재승의 인간 탐구 보고서 19>에서 '검은 양복'이라는 인물은 보스에 대한 충성심을 인정받아 처음 보는 외계인과 한 공간에 갇히게 된다. 외계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었지만 외계인이 그물을 뚫고 나와 공격하면 어쩌나, 나를 잡아먹지는 않겠지, 불을 켜야 하는지 아니면 차라리 외계인이 안 보이게 불을 끄는 것이 나은지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외계인과 갇혀 있다 보니 점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게다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려니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흘렀다. 언제 올지 모르는 보스를 한없이 기다리던 검은 양복은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잠을 청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자는 동안 시간이 특별히 빨리 흐르지 않지만, 그 동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므로 시간이 훌쩍 지났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월요병은 지구인들이 주말에 잠을 많이 자서 생기는 증상임. 지구인의 몸은 평소보다 2시간만 더 자도 신체 리듬이 깨짐. 그런데 학교에 가거나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에는 이미 깨져 버린 신체 리듬을 억지로 되돌려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시차증'에 시달리는 것.
비밀 요원 38호는 상습 지각생이다. 작년 5월 둘째 주 월요일, 외계인 스파이 도청 사건이 있던 날이었다. 도청기를 가지고 있던 비밀 요원 38호가 지각하는 바람에 일을 망쳤다. 그해 12월 첫째 주 월요일에 있었던 코어시티 작전도 비슷했다. '피자 배달원'으로 위장하고 침투하기로 했던 그가 두 시간이나 늦었다. 기억 제거 훈련 날도 비밀 요원 38호가 한 시간이나 늦는 바람에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기억을 제거하려다 사람을 제거할 뻔한 아찔한 일도 있었다.
비밀 요원 38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그는 전 세계 인류의 70%가 앓는 심각한 전염병에 걸렸다. 이름하여 월요병.
평소 비밀 요원 38호는 매우 건강한 편이었다. 독감이나 배탈은커녕 가벼운 감기도 안 걸렸다. 높은 데서 떨어져도 멀쩡하고, 비를 맞고 다녀도 끄떡없었다. 그의 월요병은 금요일 밤부터 시작된다. 늦게까지 춤을 추고, 토요일에는 늦잠을 잔다. 일요일에는 쇼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종일 침대에서 뒹굴거린다. 자다깨다 하다 보니 당연히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웹툰을 보는 루틴이다.
그의 동료인 비밀 요원 37호에게도 주말은 소중하다. 금요일 퇴근 후에는 주로 친구들을 만나 영화를 보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눈다. 토요일에는 가족들과 소풍을 가서 아이들과 뛰어놀았고 일요일에는 집 안 청소를 하고 직접 만든 저녁 식사를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도 평일과 비슷한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월요병 없는 비밀 요원 37호의 비밀이었다.
월요병이 잠이 부족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잠을 많이 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니. 뭔가 배신당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또 인간을 탐구했다는 뿌듯함도 크다. <인간 탐구 보고서> 시리즈와 함께하면서 인간인 나 자신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 새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뇌 과학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쪽에 문외한인 내 수준에 딱 맞아서 좋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리즈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응원한다. <인간 탐구 보고서>도, 우리 모두도.

*네이버 미자모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