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필사 - 별과 바람 그리고 나를 힐링하는 시간
윤동주 지음 / 북카라반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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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시로만 채워진 필사책이라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년 가을 아이들과 연세대학교를 방문했었다. 교내 곳곳을 돌며 역사 탐방을 했는데 사정이 있어 윤동주 기념관은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다. 대신 기념관 맞은편에 있던 시비 앞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시비에는 읽을 때마다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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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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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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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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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불킥하는 것으로는 모자랄 만큼 부끄러운 일이 많기도 했지만 시대적인 상상을 해 보자면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들처럼 목숨바쳐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이 질문 앞에 나는 언제나 고개를 푹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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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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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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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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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쇠문을 굳게 달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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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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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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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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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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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길>에는 막막함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다만 그것을 찾기 위해 나아감'은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 길에는 동반자인 '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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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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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딸로서 엄마로서 이 시구에 어찌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영화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배우는 차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이어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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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말을 듣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 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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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깟 시로 어떻게 나라를 되찾느냐고. 장문의 편지도 아닌 몇 줄의 글로 어떻게 마음을 전달하느냐고. 물론 시 한 편으로는 독립을 앞당길 수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없다. 하지만 저마다의 가슴에 작은 불씨가 될 수는 있다.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들불을 만들면 못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베짱이 생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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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이들이 읽을 책을 고르다 <윤동주 필사> 꺼내들었다. 아직 '시'하면 짧은 글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몇 장 뒤적거리더니 이내 말없이 내려놓는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그 나이에 윤동주 시집을 끼고 있으면 아이가 아니지. 그렇다고 불혹을 넘긴 내가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읽고 쓴다. 27세의 젊은, 어린 나이에 떠난 그를 추모하며, 나는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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