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시로만 채워진 필사책이라니.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년 가을 아이들과 연세대학교를 방문했었다. 교내 곳곳을 돌며 역사 탐방을 했는데 사정이 있어 윤동주 기념관은 관람하지 못해 아쉬웠다. 대신 기념관 맞은편에 있던 시비 앞에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시비에는 읽을 때마다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윤동주의 <서시>가 새겨져 있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시를 떠올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불킥하는 것으로는 모자랄 만큼 부끄러운 일이 많기도 했지만 시대적인 상상을 해 보자면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그들처럼 목숨바쳐 나라를 지킬 수 있었을까. 이 질문 앞에 나는 언제나 고개를 푹 떨군다.
길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달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길>에는 막막함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다만 그것을 찾기 위해 나아감'은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 길에는 동반자인 '별'이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딸로서 엄마로서 이 시구에 어찌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영화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었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 배우는 차오르는 감정을 가라앉히며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이어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