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史심을 담다>를 만난 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먼저 내 아이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다라는 연대가 큰 위로가 됐다.
이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다만 그 방법이 서툴고 제각각일 뿐. 저자의 아버지는 공수부대 출신이었음에도 아이들을 강하게 다루지 않았다. 감기 기운이 있나하는 혼잣말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괜찮아? 학교 갈 수 있겠어? 전화해 줄까?"
당시 고등학생이던 저자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 이런 걸로 학교 안 가는 애가 어딨어!"
저자가 성인이 되어 직장에 다닐 때도,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도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손자들에게도 "학원 가기 힘들면 할아버지가 엄마한테 얘기해 줄까?"하며 해결사가 되고 싶어했다.
역사 선생님인 저자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조선의 3대 국왕이었던 태종을 떠올린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군주 '태종' 역시 늘 자식의 곁에 든든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태종은 카리스마 있고 거친 남자로 대표되는 인물이지만 사실 이성계의 아들 중 유일하게 문과 과거에 급제한 인물로 문무를 겸비한 왕이었다. 게다가 자식에게는 한없이 부드러운 아버지였다.
아버지 태종은 장남이었던 양녕대군이 학문을 멀리하고 비행을 일삼아도 이해하려 했고 억지로 학문을 강요하지 않았다. 둘째 아들이었던 효령대군은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불교에 심취해 있었지만 아들의 취미에 간섭할 수 없다며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아들들의 성향과 기질을 파악했던 태종은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충녕대군은 책을 가까이하며 착실하고 부지런한 성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또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 등 외교적인 행사에서 술을 한 잔도 못하는 것은 군주로서 부족한 부분이 될 수 있으므로 술을 한 잔도 하지 못하는 효령대군보다 술을 마실 수 있었던 충녕대군이 적임자였다. 그렇게 세자가 되어 어진 정치를 한 충녕대군이 바로 조선 최고의 성군인 세종이다.
세자 책봉 이후 태종은 아들의 정치에 해가 될 수 있는 요소는 모두 제거했다. 권력을 넘볼 여지가 있는 인물들을 다 축출한 것이었다. 자신의 처남이자 세종의 삼촌이었던 민 씨 형제들은 물론, 세종의 장인인 심온 역시 제거되었다. 세종의 앞길에 혹여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남겨두지 않았다.
그 옛날의 피바람을 스마트폰이 이어받았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스마트폰의 유해함에서 분리시키려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먼 미래보다 눈앞의 현실만 보이는 아이들과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