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사 희노애락이듯 1592년 4월의 어느 날, 멀리 남쪽 지방에 일본 군대가 쳐들어 오더니 거침없이 한양을 향해 밀고 올라왔다. 놀란 임금은 궁궐을 버리고 도망쳤고, 손쉽게 경복궁을 차지한 일본군의 만행에 궁궐에 불이 났다. 이때부터 시작된 광화문의 수난은 한동안 이어졌다. 난리통이 끝나고 무너진 왕조의 위엄을 세우고자 경복궁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광화문은 주변 터보다 높여 난간을 세운 월대를 만들어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무리하게 돈을 거두는 바람에 나라 경제가 혼란해지고, 시도 때도 없이 공사장에 불려 나오는 백성들의 고생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직 나라의 재건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 광화문에서 다시 종소리가 울리게 되었다.
기쁨도 잠시, 일본의 식민 치하를 겪으며 어렵게 복구한 경복궁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다행히 광화문은 보존되었지만 더 이상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문이 아니었다. 경복궁 앞에 총독부 건물을 세운 일본은 광화문이 그것을 가리게 되자 궁궐 정문이었던 광화문을 동쪽 구석으로 옮기기까지 했다. 이후 일어난 한국 전쟁에서 폭탄을 맞은 광화문은 나무로 된 다락 부분이 모두 부서져 돌로 돈 몸체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참혹한 전쟁이 끝났지만 나라 살림을 일으키느라 광화문은 한동안 처참한 모습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1968년에야 광화문의 옛 모습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본모습과는 다르게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또 원래 있던 자리에 도로가 나 버려 제자리에서 살짝 비켜 세워졌다. 이후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조선 총독부 건물은 철거되었고, 광화문은 예전 설계 도면대로 꼼꼼하게 돌로 담을 쌓고 다락을 올려 새로 지어졌다. 현판도 고종 임금 때 썼던 글씨체를 되살려 만들었다. 처음 만들어진 뒤로 여러 차례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지고 했던 광화문이 드디어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