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집
정보라 지음 / 열림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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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엄마 경력 12년 차다. 글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아 키우고 있긴 하지만, 아주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는 멈칫하게 된다. 그 가장 밑바닥에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두껍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머릿속에는 '저주 토끼 정보라'로 각인돼 있는 바로 그 정보라 작가표 육아와 양육이라니.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유명세가 커질수록, 특히 해외에서 큰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수록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집>에서 그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아 한숨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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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부고는 옳지 못하다고 무정형은 생각했다.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 아이의 죽음은 부당하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집, 2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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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임을 깨닫는다. 세상 그 어떤 생명도 자신의 탄생에 관여할 수 없지만, 그래도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집>의 배경이 되는 미래 역시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아가는 동안 나를 관통한 하나의 생각은 '이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일인지, 그 언젠가인 미래의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시민은 누구나 한 달에 하루,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거나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의 양육을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지는 '아이들의 집' 같은 제도를 보면 이건 분명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찰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뒤, 범죄에 연루되거나 해외로 입양 보내져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부분, 저마다의 이유로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을 꾀어내 수당을 챙기는 어른들, 아이가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기 충격까지 받게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만나보니 이건 '4세 고시'까지 등장한 대한민국의 현실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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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큰 축은 하나의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는 아이였고, 가해자는 엄마였다. 한동안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자 담임 교사는 경찰과 교육청에 신고를 했다. 이후 아이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은 지 석달 만에 완전한 미라 상태로 발견된다. 정보라 작가가 꾸며낸 현실인 듯 비현실적인 미래의 세계에 살고 있는 무정형은 이런 상황에서 집안을 조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보디캠을 켜고 집안으로 들어선 무정형을 덮친 두 가지 감각은 시각을 뒤덮는 어둠과 후각을 틀어막는 표백제의 냄새였다.

현 주인이 이사오기 전에도 그 집을 조사했던 무정형은 보디 캠을 켜고 집 안 곳곳을 살핀다. 집 안의 모든 불은 꺼져 있고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꼼꼼하게 가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집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부엌에는 접시 한 장 나와 있지 않았고, 레인지 주변에는 그 흔한 국자나 뒤집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뿐 아니라 그와 짝꿍인 소파도 없어 전체적으로 빈집과 다르지 않았다. 침실과 욕실까지 둘러 본 무정형은 이곳은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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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없어도, 부모가 다쳐도, 부모가 아파도, 부모가 가난해도, 부모가 신뢰할 수 없는 인격을 가졌거나 범죄자라도, 아이들은 그런 부모와 아무 상관 없이 자라날 수 있었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었다.

아이들의 집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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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엄마는 이혼 후 홀로 아이를 감당해야 했다. 그 고독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어느 종교 단체는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왔다. 그리고 혼자서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지 증명해 보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말에 엄마는 불안에 떨었다. 종교 단체에서 주는 약을 받아먹어 판단이 흐려진 엄마는 딸의 수학 실력 향상을 위해, 딸을 지키고 함께하기 위함이라 믿으며 어느 한 클리닉을 찾아 딸에게 전기 충격을 주었다. 엄마가 기대한 만큼 빠르고 명백하게 아이의 수학 실력이 늘지도, 판단력이 우월해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를 더 자주 클리닉에 데려가 점점 더 강하게 전기 충격을 주었다. 아이는 아팠지만 엄마를 위해 참았다. 로봇인 앨리스에게만 오직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아이는 그렇게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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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의 죽음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혈연이 있는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고 행운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슬픈 일이지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두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정보라의 <아이들의 집>에서는. 돌봄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고유의 권리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정보라 작가의 <아이들의 집>은 저출산과 아동 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도전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국가가 함께 아이를 키워준다면 아동 학대나 동반 자살 같은 가슴 아픈 소식은 저 멀리로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의 집
저자
정보라
출판
열림원
발매
202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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