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살아갈수록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임을 깨닫는다. 세상 그 어떤 생명도 자신의 탄생에 관여할 수 없지만, 그래도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잘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집>의 배경이 되는 미래 역시 뭐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아가는 동안 나를 관통한 하나의 생각은 '이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일인지, 그 언젠가인 미래의 일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시민은 누구나 한 달에 하루, 돌봄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거나 기본적으로 모든 아동의 양육을 국가가 일정 부분 책임지는 '아이들의 집' 같은 제도를 보면 이건 분명 미래의 일이다. 하지만 찰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아이를 잃어버린 뒤, 범죄에 연루되거나 해외로 입양 보내져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부분, 저마다의 이유로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들을 꾀어내 수당을 챙기는 어른들, 아이가 똑똑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전기 충격까지 받게 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만나보니 이건 '4세 고시'까지 등장한 대한민국의 현실 그대로였다.
이야기의 큰 축은 하나의 살인 사건이다. 피해자는 아이였고, 가해자는 엄마였다. 한동안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자 담임 교사는 경찰과 교육청에 신고를 했다. 이후 아이는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은 지 석달 만에 완전한 미라 상태로 발견된다. 정보라 작가가 꾸며낸 현실인 듯 비현실적인 미래의 세계에 살고 있는 무정형은 이런 상황에서 집안을 조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보디캠을 켜고 집안으로 들어선 무정형을 덮친 두 가지 감각은 시각을 뒤덮는 어둠과 후각을 틀어막는 표백제의 냄새였다.
현 주인이 이사오기 전에도 그 집을 조사했던 무정형은 보디 캠을 켜고 집 안 곳곳을 살핀다. 집 안의 모든 불은 꺼져 있고 창문은 전부 커튼으로 꼼꼼하게 가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집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 없었다. 부엌에는 접시 한 장 나와 있지 않았고, 레인지 주변에는 그 흔한 국자나 뒤집개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뿐 아니라 그와 짝꿍인 소파도 없어 전체적으로 빈집과 다르지 않았다. 침실과 욕실까지 둘러 본 무정형은 이곳은 아이를 양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