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 나민애의 인생 시 필사 노트
나민애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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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는 언니뻘인 나민애 선생님을 떠올리면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호탕한 웃음 소리가 생각난다. 그리고 몹시 궁금하다. 시인이 아버지인 삶은 어떤 것인지. 시인의 딸로 살아온 과거와 현재는 어떠한지.

그 '나태주'와 그 '나민애'가 부녀 사이라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다. 이후 그들을 지켜본 나의 첫 번째 감정은 '질투'였다. 아니, 무슨 아빠가 회사원이나 사업가,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아니라 시인이람. 의사나 변호사 아빠를 둔 애들보다 백 배는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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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를 만나기 전 나는 나민애 선생님을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동아일보를 구독중인데 나민애 선생님이 '시가 깃든 삶'이라는 글을 연재중이시기 덕분이다. 선생님의 글이 실린 날에는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이거나 주저 앉곤 한다. 처음에는 눈으로 읽고, 다음에는 소리내어 읽고, 마지막에는 말 그대로 마음으로 읽는다. 그 후 나민애 선생님의 첨언을 읽으면 '그래, 그럴 수도 있지.'하며 마음 그릇이 태평양만해진다. 그래서 선생님의 신간인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가 더욱 반가웠다. 깜찍하게도 77개의 시와 77개의 마음을 담아주신 덕분에 시도 읽고 따라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 나태주의 <시>와 이성선의 <그냥 둔다>가 내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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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이제 이 시인의 소원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세상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것. 너무 큰 소원을 위해 여든이 넘은 시인은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닌다. 나는 자주 보지도 못한다. 바쁜 시인의 퉁퉁 부은 발을 위해 신발이나 사서 보내야겠다.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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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시>에서 마당을 쓸고, 한 송이 꽃이 피어나고, 마음 속에 시 하나가 싹 트고, 그리고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일은 지구 한 모퉁이를 깨끗하고, 아름답고, 밝게 한다. 나민애 선생님의 말씀처럼 꽃 곁에 있으면 향기가 묻고, 햇살 곁에 있으면 온기가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 향기와 온기가 상처난 마음에 새 살이 차오르게 하면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나 혼자만 잘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다같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가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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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둔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시이다. 특별한 목적을 두고 그냥 두는 것과 그야말로 그냥 두는 것. 후자의 경우 힘들고 어렵고 하기 싫어서 그냥 두는 경우가 많다. 해야 하는 걸 너무 잘 알지만 오늘 하루쯤은 '땡땡이'치는 심정으로 다 내버려두는 것이다. 물론 내일 아침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묵직하게 내 어깨에 얹어지겠지만,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니까.

전자의 그냥 두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물론 이는 마당의 잡초와 잡초 위에 나온 벌레, 그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에 대한 믿음이 전제한다. 후자가 '그냥 둔다' 이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전자의 경우 그냥 두긴 하지만 한 번씩 무심히, 쓰윽 관심의 눈길을 보낸다. '잘 하고 있네, 그럴 줄 알았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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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잡초는 그냥 두자. 사실 우리는 우리를 그냥 두고 싶다. 잡초 위에 벌레를 그냥 두자. 솔직히 우리는 우리를 그냥 두고 싶다. 벌레 위의 능선도 그냥 두자. 절실하게 우리는 우리를 가장 그냥 두고 싶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을 자유가 목마르다. 그걸 허락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그걸 허락하고 싶다.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 81쪽

이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우리의 '그냥 둔다'는 방치가 아닌 쉼이므로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바닥난 에너지를 재충전한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제 할 일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문득 아이들이 실수하도록, 좌절하도록, 저만의 길을 찾아 헤매도록 그냥 두는 것 역시 엄마의 역할임을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시를 읽고도 '기승전아이들'이라니, 쿨한 엄마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 전에 일단 나 자신부터 좀, 그냥 좀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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