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녀 재판은 진행형'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지금도 곳에서 매일 크고 작은 마녀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밀고'와 '타인을 처벌함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간혹 자비로울 수 있으나 대중으로서 우리는 매우 무자비하고 집탈한 존재라는 것이다. '타진요 사건'으로 회자되는 어느 한 가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가수 본인에 따르면 그는 글쓰기 재주 하나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누구나 그렇듯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방황했다. 그러다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만들며 글쓰기 재주를 뽐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대중들은 점점 그의 학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가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증거 찾기에 혈안이 되었고, 마침내 똘똘 뭉쳐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마녀 재판이었다. 당시 그는 결혼을 하여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에게 속았다는 대중들의 분노는 갈수록 들끓어 삼족을 멸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처럼 타올랐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에도 믿을 수 없을만큼 끔찍한 마녀 재판의 예시들이 나온다. 나라를 구하고도 19살의 나이에 화형당한 잔 다르크부터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을 잃고, 참혹하게 죽어간 그녀들. 끔찍하게도 이런 현상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남의 집 불구경을 좋아하듯 마녀 화형식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공이 컸다.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온 군중을 위해 식당과 여관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인범의 교수형이 집행되었을 때는 프랑스 전체에 광기에 가까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1904년 미국 미시시피주에서는 열린 어느 화형식에서는 화형식이 열리기 전 사람들이 범인들의 손가락과 귀를 잘라 전리품처럼 가져갔고 살아있는 채로 불태웠다. 그때 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위스키와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등 마치 축제장과 같았다고 한다.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가장 잔혹한 것은 이같은 마녀 재판 대상과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을 뿐, 현재에도 공공연히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인류가 건재한 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 부조리하고 감정적이며 부정확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형사사법제도다.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고, 감정과 분노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여러 가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적법절차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검사들이 지키는 정의는 실체적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다.
그 절차를 악용하는 검사들이 있다.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지만 때로 정의를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류는 길고 긴 선사 시대를 건너 역사 시대에 다다라 후대를 위해 모든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의 지금을 위한, 내일을 위한 '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