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 오심과 권력, 그리고 인간을 심판한 법의 역사 / 자유기업원 2026 추천도서 50권 | 법경제와 규제개혁 부문
김웅 지음 / 지베르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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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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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대한 이야기라 일말의 기대도 없었던 덕분일까, 정색과 유머를 오가는 저자의 글발에 홀딱 빠져버렸다. 나와는 위로 띠동갑인 저자 김웅은 전라남도 여천군 출생이다. 이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 2000년 사법연수원 수료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나간다. 인천지검을 시작으로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등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던 중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 국회 통과에 반대하여 사표를 제출하고 유승민 전 의원의 권유로 새로운보수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이런 놀라운 발자취를 남긴 저자이기에 책 속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김웅식의 유머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정의'에 성큼 다가설 수 있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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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의 사회계약설에 따르면, 법은 '신의 명령'이 아닌 '사람 간의 계약'이다. 법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신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약속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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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약속하고, 그것을 지켜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약속이 지켜졌을 때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가 빛이 난다. 때문에 아이들과도 약속의 중요성과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사실 우리는 하루 종일 약속 속에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 있는 인도와 차도에는 각각 사람과 차를 위한 신호등이 따로 있다. 인도에 있는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차는 정지하고, 사람이 길을 건넌다. 반대로 차도에 있는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차는 움직이고, 사람은 멈춘다. 만약 누군가가 '오늘 하루쯤은 그런 약속 지키고 싶지 않아, 내 기분대로 할 거야.' 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눈에 뻔히 보이고, 실제 법이 없던 시절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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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법'이 탄생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 법은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위해 신이 하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반하는 사람은 엄벌에 처해졌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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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죄목은 이랬다. 그가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이며, 젊은이를 타락시켰다는 것. 또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겼다는 것. 고대 그리스인들은 법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인데, 신을 믿지 않으면 법도 지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소싯적 호플리테스라 불리는 중무장 보병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던 소크라테스는 탈옥을 권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약을 마셨다. 그에게 있어 육체는 지식의 탐구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으로부터 해방되야 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 믿었기에 홀로 그 길을 찾아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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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성과 철학이 폭발했다고 하는 아테네인들은 도대체 왜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인 죄 없는 소크라테스를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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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재판은 진행형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녀 재판은 진행형'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지금도 곳에서 매일 크고 작은 마녀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밀고'와 '타인을 처벌함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간혹 자비로울 수 있으나 대중으로서 우리는 매우 무자비하고 집탈한 존재라는 것이다. '타진요 사건'으로 회자되는 어느 한 가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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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본인에 따르면 그는 글쓰기 재주 하나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누구나 그렇듯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방황했다. 그러다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노래를 만들며 글쓰기 재주를 뽐내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였는지,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대중들은 점점 그의 학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가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는 증거 찾기에 혈안이 되었고, 마침내 똘똘 뭉쳐 그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갔다. 마녀 재판이었다. 당시 그는 결혼을 하여 아내와 아이가 있는 가장이었다. 그 뿐 아니라 그의 가족 모두에게 속았다는 대중들의 분노는 갈수록 들끓어 삼족을 멸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을 것처럼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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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에도 믿을 수 없을만큼 끔찍한 마녀 재판의 예시들이 나온다. 나라를 구하고도 19살의 나이에 화형당한 잔 다르크부터 말도 안 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을 잃고, 참혹하게 죽어간 그녀들. 끔찍하게도 이런 현상이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남의 집 불구경을 좋아하듯 마녀 화형식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공이 컸다.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온 군중을 위해 식당과 여관이 생기며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1939년 와이트만이라는 살인범의 교수형이 집행되었을 때는 프랑스 전체에 광기에 가까운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1904년 미국 미시시피주에서는 열린 어느 화형식에서는 화형식이 열리기 전 사람들이 범인들의 손가락과 귀를 잘라 전리품처럼 가져갔고 살아있는 채로 불태웠다. 그때 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천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위스키와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등 마치 축제장과 같았다고 한다.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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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잔혹한 것은 이같은 마녀 재판 대상과 형태가 조금씩 바뀌었을 뿐, 현재에도 공공연히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인류가 건재한 한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이 부조리하고 감정적이며 부정확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형사사법제도다. 우리는 진실을 알 수 없고, 감정과 분노에 따라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기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여러 가지 견제 장치를 둬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적법절차이다. 그래서 저자와 같은 검사들이 지키는 정의는 실체적 정의가 아니라 절차적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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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차를 악용하는 검사들이 있다. 비단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법은 정의를 위한 것이지만 때로 정의를 해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인류는 길고 긴 선사 시대를 건너 역사 시대에 다다라 후대를 위해 모든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딘가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의 지금을 위한, 내일을 위한 '법'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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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디딘 발자국은

언젠가 뒷사람의 길이 되리

이양연의 '야설(夜雪)'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을까?
저자
김웅
출판
지베르니
발매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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