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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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이었던가. 어떤 경로로, 무슨 이유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과 저자의 이름은 못 박은 듯 기억나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끝까지 읽기는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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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인생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자만하며 살던 중 바로 그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술술 잘 읽히지 않았다. 자주 멈춰야 했고,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왜 이 책이 1960년에 출간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지 깨닫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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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하퍼 리는 그녀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앵무새 죽이기>로 1961년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소설은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서 상연되며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2001년에는 미국의 시카고 시당국에서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한 권의 책, 하나의 시카고'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했다.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전 시민이 이 소설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를 통해 성경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주민의 삶을 바꿔 놓는 데 크게 이바지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이쯤 되면 세상에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사람, 아직 안 읽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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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걸쳐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에는 작가의 직접 체험과 그녀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목격담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성인이 된 화자, 스카웃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메이콤은 오래된 읍이다. 스카웃의 기억에 따르면 그 곳은 무기력하고 오래됐으며 장마철이 되면 길거리는 온통 붉은 진흙탕으로 바뀌었다. 인도에는 잡초들이 자라났으며, 법원 건물은 광장 앞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느릿느릿한 걸음거리로 돌아다녔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었지만 왠지 그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마땅히 가야할 곳도, 사야할 물건도, 그것을 살 돈도, 메이콤의 경계를 벗어나서는 마땅한 구경거리도 없었기 때문에 딱히 서두를 만한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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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여름, 집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어 여러 친척들 집을 전전하는 딜이 메이콤에 나타났다. 스카웃과 네 살 위인 오빠 젬은 단 번에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 변호사 일로 바쁜 아빠, 그리고 살림을 맡아주시는 잔소리쟁이 캘퍼니아 아줌마 사이에서 매일을 버텨내던 그들에게 '신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을. 처음에는 영화 '드라큘라' 이야기였고, 다음으로는 '타잔', '로버네 아이들' 같은 연극 놀이였다. 하지만 여름은 깊어갔고, 그들의 레퍼토리는 바닥났다. 신박한 것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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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부의 생김새를 그럴듯하게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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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발자국으로 미루어 봤을 때 2미터 좀 안 되고. 식사는 손에 잡히는 대로 다람쥐나 고양이 날고기를 먹어. 그래서 손에는 언제나 핏자국이 묻어 있지. 동물을 날 것으로 먹는다면 어느 누구도 핏자국을 말끔히 씻어낼 수 없을 테니까. 얼굴엔 들쭉날쭉 길게 흉터가 나 있고, 이빨은 누렇고 썩어 있어. 눈알이 튀어나오고, 거의 언제나 침을 줄줄 흘리지.

앵무새 죽이기, 33쪽

심심하던 차에 시작된 '부 래들리 집 밖으로 끌어내기' 프로젝트는 부의 집에 성냥불 확 그어버리기, 긴 막대에 쪽지 매달아 창문 틈으로 전달하기, 그냥 정중하게 현관문 두드리기 등 실현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를 넘나들며 박차를 가했다. 그러던 중 부 아저씨의 집 근처에 있는 나무 구멍에서 정체 불명의 물건들이 발견된다. 그것들은 마치 누군가 남매에게 보내는 암호 같았다. 부 아저씨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타오를 무렵, 마을에는 소방차가 세 대나 출동해야 할만큼 큰 불이 났다. 스카웃과 젬이 친구들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놀림을 견디느라 고군분투할 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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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웃, 단순히 변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으로 보면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기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문제에 관해 어쩌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만 약속해 주렴.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 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 봐...

앵무새 죽이기,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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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아이도 자신의 아버지를 '깜둥이 애인'이라 놀리는 걸 오래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카웃도, 그의 오빠 젬도 법보다 가까운 주먹으로 그들을 응징한다. 하지만 '마당에서 아이들에게 하지 않을 일은 집안에서도 절대로 하지 않는' 스카웃의 아빠는 그답게 아이들을 타이른다. 그건 북부 자유주와 남부의 노예주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메이콤 사람들은 지금 친구들과 싸우고 있지만,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친구들이고 메이콤은 여전히 그들 모두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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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어지는 2부에서는 백인 여성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는 톰 존슨의 재판과 유죄 평결, 절망한 톰의 탈옥과 사살 등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닌, 지금 현재에도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500쪽이 넘는 책이라 꽤 여러 날 붙들고 있었다. 무심히 지켜보던 첫째가 물었다.

"엄마 그 책 뭐예요? To kill..이던데 살인 사건이예요?"

책장 한 켠에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공간이 있다. 중학생이 되어, 고등학생이 되어, 비로소 성인이 되어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을 모아둔 곳이다. <앵무새 죽이기>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언제쯤 아이들의 정의감이 불타오를까.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아직 안 읽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변호사였던 하퍼 리의 아버지처럼, 소설 속 스카웃의 아빠처럼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늘 거실에서 신문과 책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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