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이었던가. 어떤 경로로, 무슨 이유로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제목과 저자의 이름은 못 박은 듯 기억나지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끝까지 읽기는 했는지 가물가물하다. 그만큼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인생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자만하며 살던 중 바로 그 <앵무새 죽이기>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술술 잘 읽히지 않았다. 자주 멈춰야 했고,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왜 이 책이 1960년에 출간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지 깨닫게 했다.
저자인 하퍼 리는 그녀의 처녀작이자 대표작인 <앵무새 죽이기>로 1961년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소설은 영화와 연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서 상연되며 더욱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2001년에는 미국의 시카고 시당국에서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한 권의 책, 하나의 시카고'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선정했다.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전 시민이 이 소설을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를 통해 성경과 마찬가지로 시카고 주민의 삶을 바꿔 놓는 데 크게 이바지한 책으로 평가받았다. 이쯤 되면 세상에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사람, 아직 안 읽은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다.
<앵무새 죽이기>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에 걸쳐 오랫동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에는 작가의 직접 체험과 그녀 주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목격담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성인이 된 화자, 스카웃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메이콤은 오래된 읍이다. 스카웃의 기억에 따르면 그 곳은 무기력하고 오래됐으며 장마철이 되면 길거리는 온통 붉은 진흙탕으로 바뀌었다. 인도에는 잡초들이 자라났으며, 법원 건물은 광장 앞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시절 사람들은 느릿느릿한 걸음거리로 돌아다녔고,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었지만 왠지 그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마땅히 가야할 곳도, 사야할 물건도, 그것을 살 돈도, 메이콤의 경계를 벗어나서는 마땅한 구경거리도 없었기 때문에 딱히 서두를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집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어 여러 친척들 집을 전전하는 딜이 메이콤에 나타났다. 스카웃과 네 살 위인 오빠 젬은 단 번에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 변호사 일로 바쁜 아빠, 그리고 살림을 맡아주시는 잔소리쟁이 캘퍼니아 아줌마 사이에서 매일을 버텨내던 그들에게 '신나는 일'이 생겼다는 것을. 처음에는 영화 '드라큘라' 이야기였고, 다음으로는 '타잔', '로버네 아이들' 같은 연극 놀이였다. 하지만 여름은 깊어갔고, 그들의 레퍼토리는 바닥났다. 신박한 것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