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고도 그리운 초등학교 운동회 날. 하늘을 가득 채운 만국기를 올려다보던 작은 나를 떠올려본다. '비슷한 국기가 많네.' 하면서. 나라마다 국기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각 국기마다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내게 그것들은 그저 다른 모양과 다른 색깔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줄무늬와 십자가, 그리고 별이 많다는 것쯤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왠지 바람에 나부낄 것만 같은 표지의 이 책 <펄럭이는 세계사>를 만나 많은 미스테리가 풀렸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국기가 있다. 태극기보다 그리기 쉬운 국기, 태극기보다 그리기 어려운 국기. 직사각형을 삼등분한 뒤 왼쪽부터 파랑, 하양, 빨강으로 칠하면 되는 프랑스의 국기는 전자에 속한다. 프랑스 뿐 아니라 가로나 세로로 삼등분한 국기를 두세 가지의 색으로 채운 국기가 꽤 많다. 가깝게는 이탈리아와 헝가리, 루마니아 등 유럽 일대의 나라들을 꼽을 수 있다. 멀게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차드, 말리 같은 아프리카 대륙의 나라이다.
현재 프랑스 삼색기의 전신이 된 것은 파리의 시기였다. 직사각형을 이등분해서 왼쪽부터 파랑, 빨강으로 채운 파리 시기는 이후 아이티 공화국, 리히텐슈타인 등이 국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리의 상징색인 파랑과 인민을 상징하는 빨강 사이에 부르봉 왕가를 상징하는 흰색이 자리하게 된 것은 1789년에 일어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 이후 프랑스의 국기는 여러 변화를 거치게 된다. 한 때 삼색기의 줄무늬 순서가 왼쪽부터 빨강, 하양, 파랑이었던 적도 있고, 줄무늬 폭의 비율이 지금처럼 삼등분이 아닌 파랑, 하양, 빨강 각각 30, 33, 37로 조금씩 달랐던 때도 있었다.
또 프랑스 곳곳에서는 색조가 다른 두 종류의 삼색기를 만날 수 있다. 1976년 원래 것보다 밝은 색조가 사용된 삼색기가 도입되었는데, 텔레비전 화면발을 좀 더 잘 받기 위해서였다.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할 때 세 가지 색 모두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줄무늬 폭을 조정하기도 한다.
치살피나 공화국은 1802년 국명을 이탈리아 공화국으로 국명이 바꾸었다. 이 신생국가의 국기는 빨간색, 흰색, 초록색의 정사각형이 서로 겹쳐진 매우 특이한 형태였다. 그로부터 2년 후 나폴레옹이 스스로를 황제로 선포하며 이탈리아 공화국 국기 한 가운데에 자신을 상징하는 독수리를 추가하면서 정사각형 모양은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