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보낸 아들, 며느리 대신 애지중지 손주를 키우시는 채빈이 할머니는 진학 상담실에 앉자마자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서울대핵교를 보내고 싶으나 너무 멀고, 차비도 아깝고, 결정적으로 관악산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엔 귀한 손주 채빈이의 다리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베짱은 중학교 때 전교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던 손주의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 전 과목 모두 9등급인 성적표를 받아든 채빈이는 잠시나마 고려대핵교 앞 닭발집에서 일하는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무려 전국 9등이라 둘러댔던 것이다. 고대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 발바닥도 못 따라온다는 연세대핵교 진학도 어림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셨을까.
사실 채빈이는 방과 후 스터디카페의 줄임말인 '스카'가 아닌 '스카이' 노래방에서 소위 삐끼 노릇을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부쩍 몸이 안 좋아진 할머니를 보며 언젠가 혼자가 될 것을 깨닫고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내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재능이 있었고, 미대에 진학하고 싶은 꿈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생각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연필을 부러뜨리며 자신의 꿈을 동강내 버렸던 채빈이었다. 할머니에게 채빈이를 맡기고 떠난 채빈이의 부모님, 언젠가 다시 만날 아들, 며느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손자를 돌보고자 애썼던 할머니. 그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던 채빈이.
저자는 준범이와 채빈이를 보며 자신의 방황을 떠올린다. 그 역시 준범이 아버지처럼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자식들이 세상에 나갈 때 그저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슴 시린 시간을 경험한 아비였다. 꽤나 힘이 들었던 서른의 어느 겨울밤에는 의정부 거리를 울면서 걷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