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문경보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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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제목을 통해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고, 세상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살지 않는 아이들이라는 것. 그리고 저자는 담장을 뛰어넘으려는 아이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앉히려 하지 않고, 기꺼이 아이들이 밟고 올라설 수 있게 자신의 등을 내주는 좋은 어른, 훌륭한 선생님일 것이라는 감사한 힌트도. 딱 그만큼의 감동이 있을 거라 각오하고 시작한 책 읽기는 좀처럼 진도가 나지 않았다. 저마다의 몫으로 주어진 담장 앞에선 아이들이 가여워서, 그 담장을 넘어서지 못했던 나의 열아홉이 아파서 자주 멈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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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소리의 가치는 듣는 이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귀명창이 있어야 소리꾼의 소리가 더 진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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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로 올라와 상담심리를 전공한 뒤 35년동안 청소년 곁을 지켰다. 또 '문청소년진로연구소'를 설립해 학교와 학교 담장 너머 청소년들, 교사,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상담을 했다. 오랜 시간동안 꿈꾸는 것이 힘겨워, 꿈을 이루는 것이 너무 힘들어 아예 꿈을 외면해 버린 아이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며, 그 친구들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던 관음의 시간동안 저자는 마음이 너무 아렸다고 한다. 몇 가지 검사 항목을 통해 아이들의 성격과 적성,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래가 표와 그래프로 그려지는 세상에서 그는 등대를 자처하고 나선다. 거친 밤바다를 함께 항해하진 못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게 밝혀주는 등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맞아주는 등대.

실제 저자가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등대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켜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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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큰 D와 작은 D가 충돌하면 누가 양보해야 할까요? 아시겠지만 더 많이 사랑하는 큰 D가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큰 D는 어느 순간부터 작은 D를 끌고 가기보다는 뒤에서 돌봐줄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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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준범이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신 부친을 대신해 집안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인이 되고 싶었으나 의사의 길을 가게 됐고,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존경하던 준범이 역시 의사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에 주도적인 성향이 강한 D형인 아버지는 아들의 인생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준범이 역시 같은 D형이라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헤쳐나가길 원했다.

다행히 선생님의 자연스러운 중간 역할 덕분에 부자 간의 거리는 좀 더 좁혀졌고, 준범이는 관심은 있었으나 아버지께 말도 꺼내지 못했던 명문대 심리학과에 안정적으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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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뭐냐 콤퓨타학과 그게 좋다고 하드만유. 핵교는 우리 집 근처에 고려대핵교가 있는디 그 대학 가는 걸로 해주셔유."

<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37쪽

먼저 보낸 아들, 며느리 대신 애지중지 손주를 키우시는 채빈이 할머니는 진학 상담실에 앉자마자 당당하게 말씀하셨다. 서울대핵교를 보내고 싶으나 너무 멀고, 차비도 아깝고, 결정적으로 관악산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엔 귀한 손주 채빈이의 다리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베짱은 중학교 때 전교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던 손주의 거짓말에서 비롯되었다. 전 과목 모두 9등급인 성적표를 받아든 채빈이는 잠시나마 고려대핵교 앞 닭발집에서 일하는 할머니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무려 전국 9등이라 둘러댔던 것이다. 고대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 발바닥도 못 따라온다는 연세대핵교 진학도 어림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어떤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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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채빈이는 방과 후 스터디카페의 줄임말인 '스카'가 아닌 '스카이' 노래방에서 소위 삐끼 노릇을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부쩍 몸이 안 좋아진 할머니를 보며 언젠가 혼자가 될 것을 깨닫고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교내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탈 정도로 재능이 있었고, 미대에 진학하고 싶은 꿈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생각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연필을 부러뜨리며 자신의 꿈을 동강내 버렸던 채빈이었다. 할머니에게 채빈이를 맡기고 떠난 채빈이의 부모님, 언젠가 다시 만날 아들, 며느리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손자를 돌보고자 애썼던 할머니. 그 모든 것을 마음에 품고 세상을 향해 뛰어들었던 채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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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준범이와 채빈이를 보며 자신의 방황을 떠올린다. 그 역시 준범이 아버지처럼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자식들이 세상에 나갈 때 그저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슴 시린 시간을 경험한 아비였다. 꽤나 힘이 들었던 서른의 어느 겨울밤에는 의정부 거리를 울면서 걷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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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할망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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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할머니의 음성이었어.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어. 환청이었지.

난 어린 시절처럼 눈물을 닦고 씩씩하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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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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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하고 나니 또 소리가 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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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주 밥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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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담장을 뛰어넘는 아이들>,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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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길로 곧장 식당으로 달라겨 순댓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그 기운으로 힘든 시간을 견뎠다고 한다. 나도 종종 아이들에게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가며 슬퍼하라고 얘기하곤 한다. 꿈도 기운이 있어야 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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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은 '문경보'이다. 그가 운영하는 상담 센터는 '문 청소년 진로 연구소'이다. 'MOON'.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담장 앞에 선 아이들을 길을 비춰주는 등대 같은 그가 있어 든든하다. 나도 그 옆에서 작지만 반짝이는 별이 되어 힘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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