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뭐든 조금씩 빠른 편이었다. 말도 금방 익혔고, 이후로는 그야말로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내내 종알댔다. 하지만 밖에 나가면, 심지어 놀이터에서도 입을 꽉 다물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많았다. 저래서 어떻게 사회 생활을 할까,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고 왕따라도 당하면 어쩌나. 아이를 낳고 기른 나만 태평했다. 내 아들이 얼마나 말하는 걸 좋아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첫째 아이는 말이 더 많아졌다. 오죽하면 아침밥을 먹으며 점심, 저녁, 다음 날 식단까지 생각해 두는 아이에게 먹으면서 말하는 직업을 찾아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 중 하나는 제발 조용히 하고 책 좀 읽으라는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독후감. 책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 아닌 읽고 난 후의 감상을 적는 진짜 독후감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는 자신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글로 써야 할 지 막막해하는 눈치다.
전작인 <어린이라는 세계>를 통해 어린이의 대변인을 자처한 저자 김소영은 읽은 것에 대해 잘 말할 수 있어야 글도 잘 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를 시도하다 보면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즉 쓰기 전에 말하고, 말한 것을 쓰도록 지도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글로 쓰일 것을 전제로 말하도록 하면 단어를 평소보다 신중하게 고르고, 문장의 앞뒤가 맞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또 책 속에서 만난 새로운 어휘도 직접 사용해 보며 언어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말하기가 독서, 나아가 글쓰기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 돕는다니 수다쟁이 아들을 둔 입장에서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렇다면 한바탕 수다를 떤 후에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저자는 '어떻게' 이전에 '무엇을'부터 생각하자고 제안한다. 좋은 글감은 쓰는 사람의 생각을 최대로 이끌어낸다. 그러면 글 쓰는 데 자신감이 생기고, 쓰는 동안 옆길로 샐 염려도 적어진다. 문제는 좋은 글감을 찾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종류에 따라 적절한 글감의 조건을 생각해 오직 글감'만' 써보라고 말한다. 하나의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보자는 취지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글을 쓰려고 한다면 내가 잘 아는 글감을 떠올려 보는 거다. 내 방 청소하는 방법, 우리 아빠의 특징, 나의 버릇 같은 것들 말이다. 일기를 위한 글감이라면 주말에 워터파크에 간 일, 친구와 함께했던 물총 싸움, 시를 위함이라면 여름 풍경, 구름과 나뭇잎 같은 글감도 훌륭하다. 나에게는 보물 공책이 여러 권 있다.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흔드는 문장도 적고, 지나가다 들은 최신 유머도 적고, 아이들이 했던 감동적인 사랑 고백도 적는다. 언젠가 그 보물 공책 속 빛나는 문장들이 내 글 곳곳에 자리를 잡을 날을 꿈꾸면서 말이다. 내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도 저마다의 글감 노트를 마련했다. 여기저기서 모아온 글감들을 정리하고, 글을 쓸 때 그 수첩을 뒤적이며 골똘히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내 마음 속에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