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음식을 한 번 먹어본 이후 다영은 엄마의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아무 맛도 안 나는 음식을 먹는 일이 더 곤욕이다. 10년 넘게 먹어 왔는데 안타깝게도 엄마가 해 준 밥이 영 입맛이 안 맞았다. 오늘도 밥과 반찬을 반 넘게 남긴 다영은 꼬르륵대는 배를 부여잡고 학교로 향한다.
'하루라도 좋으니까 맛있는 걸 내 맘대로 잔뜩 먹어봤으면....'
바로 그 때 다영에게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인적이 드문 골목 구석에 처음 보는 자판기가 눈에 띄었는데, 글쎄 그 자판기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좀 특별한 자판기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고 자판기 코앞까지 다가간 다영은 더욱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생김새는 여느 자판기와 같았지만, 보통 음료수나 과자가 늘어서 있어야 할 곳에 커다란 물음표 하나만 붙어 있었다. 게다가 지폐를 넣는 플라스틱 투입구에서는 번쩍거리는 빛이 새어 나왔다. 자판기의 정체를 알려 줄 만한 것은 반짝거리는 물음표 위에 붙은 기계의 이름밖에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나무로 만들어진 사각형 이름표에는 '장난기'라고 적여 있었다.
소원을 말하면 뭐든 이루어지기 해 주겠다는, 해적이 나오는 만화에서나 들어 본 이야기를 하는 자판기에게 다영은 밥을 좀 맛있게 먹고 싶다는 푸념을 한다. 크게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자판기가 내 놓은 맷돌을 보니 의구심은 더욱 커져갔다. 그런 다영의 마음을 읽은 듯 자판기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며 맷돌의 사용 설명서를 잘 읽어보라고 당부했다.
그날 점심, 급식실에 간 다영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맷돌을 꺼내들었다. 사용 설명서대로 음식 위에 맷돌을 두고 돌돌돌돌 돌렸다. 그랬더니 반짝거리는 하얀 가루들이 음식 위에 떨어져 내렸다. 대여섯 바퀴 정도 돌린 후 급식을 맛 본 다영은 눈이 번쩍 뜨였다. 흐물거리는 시금치 무침은 자꾸만 손이 가는 밥도둑이 되었고, 연근 조림은 마치 초콜릿 같았다. 맛없기로 유명한 급식을 한 숟가락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 다영은 그날 저녁 집에서도 맷돌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무려 열 바퀴 돌렸다. 맨 밥만 먹어도 환상적이었다. 밥이 맛있어서 행복한 다영과 딸이 밥 그릇을 싹싹 비워 뿌듯한 엄마는 아주 오랜만에 배부르고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그렇게 며칠을 밥 먹는 시간을 기다리며 지내던 다영에게 문제가 생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난 다영은 어쩐지 얼굴이 조금 당기는 것 같더니 붓기가 점점 심해졌다. 그제야 맷돌을 너무 많이 돌리지 말라는 편지의 경고가 떠올랐지만 소금 맷돌에 길들여진 입맛을 잠재우기 쉽지 않았다. 조금만, 조금만 하며 맷돌을 돌려대던 다영의 얼굴은 이제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이 팅팅 부어 버렸다. 너무 아파서 볼과 이마를 문지르며 울며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엄마가 물을 잔뜩 마시게 하고, 오이를 얇게 썰어 얼굴에 붙여 주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괜찮을 거라고 다영이를 다독이는 엄마의 손도 벌벌 떨렸다.
다음 날 아침에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로 한 다영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배고픔에 눈을 떴다.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잠을 청해 봤지만 결국 또 맷돌을 돌리고 만다. 딱 한 바퀴만 더...딱 한 바퀴만 더...
몇 시간 후 딸의 상태를 살피러 온 다영의 엄마는 충격적인 모습을 맞딱드리게 된다.
이후, 몇몇의 아이들이 이 의문스러운 자판기를 만나게 된다. 찾고 싶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는 깜짝 피리를 갖게 된 동우, 갖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 뭐든 꺼낼 수 있는 화수분 상자를 갖게 된 다혜,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의 눈에 띄지 않게 해 주는 도깨비감투를 받은 서진, 그리고 만년 2등의 삶이 서러운 경태는 황금 두꺼비를 갖게 된다. 장난기 자판기가 건네준 선물을 통해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친구들을 보며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자신의 소원과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이 이루어진다면 어떨지 상상해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다음의 다혜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