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 - 수만 가지 죽음에서 배운 삶의 가치
오은경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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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가까운 죽음은 친할머니의 것이었다. 4남 2녀를 둔 나의 조부모는 장수하셨고, 두 분 모두 집에서 돌아가셨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기도 했고, 바닷가와 푸른 들판이 함께 있는 있는 할머니 고향이 좋아 성인이 된 후에도 혼자 기차 여행 겸 할머니를 찾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좁은 방에서 할머니와 딱 붙어 잤다. 할머니의 큰아들, 나의 큰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특해하며 고맙다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할머니의 방에 있던 요강과 요구르트, 구식 티비와 진열장 곳곳에 끼워져 있던 손주들 사진 등이 눈에 선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할머니 방의 냄새 또한 코끝을 스친다.

나에게 있어 죽음은 '더 이상 볼 수 없음'이다. 멀리 있어서, 바빠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볼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받아들이는 죽음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는 '더 이상 볼 수 없음'의 대상이 내가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준비할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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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38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며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다. 누구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해봤을 저자에게도 부모의 죽음 앞에서는 무너져 내렸다. 황해도에서 온 피난민이었던 저자의 아버지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분이셨다. 하루 아침에 혈육과 떨어지고 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연민이 많았다. 특히 사회적 약자, 아픈 사람들을 절대 그냥은 못 지나쳤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누구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어느 작은 병원을 드나들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자가 있다면 여기저기서 후원을 받아 지원했다. 10년을 하루같이 주머니 가득 땅콩 맛 캐러멜을 넣고 다니며 병원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나눠주었다는 일화를 읽었을 때는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캐러멜 덕분에 아픈 시간을 견디며 버틸 수 있었을까. 그의 지극 정성에 병원 원장은 작은 사무실을 하나 내주며 당시에는 없었던 호스피스의 시작을 격려했다. 그때 저자의 아버지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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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의료인이라 하여 병과 죽음을 늦추거나 피할 수는 없는 노릇. 그에게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느 날 피를 한 대야 쏟아낸 그는 위암을 섣고받고 만다. 수술 시기는 이미 놓쳐버렸다. 저자는 고민했다. 아버지께 병명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맞을지, 나이가 있으니 위암이라는 불편한 병명을 알고 지내는 것보다 노환 때문에 아픈 것으로 아시는 게 나을지 말이다. 가족들은 간호사인 저자에게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랐지만, 당사자는 이미 자신의 몸 상태를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의 병명과 마주한 그는 평소보다 긴 침묵 끝에 수술과 수액을 포함한 어떤 연명 치료도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했다. 이후 그는 소량의 배즙과 물만 먹으며 일종의 단식을 했고, 내일이 있는 자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상대로 견딤을 이어갔다. 시시각각 죽음을 향해 가는 부모를 보는 자식의 심정, 더 이상 볼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는 걸 절절히 느끼는 그 비통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자의 아버지는 끝내 또다시 딸이 일하는 응급실에 실려오고야 만다. 그 마른 몸을 응급실 침대에 옮기자마자 숨을 거둔 그는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지켜본 저자는 이번에도 두 눈을 감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고통에 몸부림에서 해방되었다는 안도감을 만난다. 이후 어떻게 슬퍼하고 애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아버지를 땅에 묻은 후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사거리에서 신호 대기중이던 그녀는 갑자기 땅이 푸욱 꺼지는 듯한 느낌에 서둘러 운전대대를 꽉 잡고 정신을 차려보려 애썼다. 바로 그 때, 일에 쫓겨 미뤄뒀던 아버지의 죽음이 터져 올랐다.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던 아버지의 부재는 저 깊은 어디에선가 치솟아 오른 흐느낌으로 터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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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마음도 가누지 못한 채 운전대에 파묻혀 우는 나에게 교통 경찰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세요?"

그때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 아버지의 침묵은 '할 말 없음'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음'임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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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얼마 후 어느 새벽, 저자의 어머니가 머물던 요양 병원에서 연락이 온다. 전날까지만 해도 별 변화가 없었는데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죽음의 코 앞에 있는 어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밝은 빛을 따라가세요. 어머니가 내 어머니여서 나는 참 좋았어요. 어머니 덕에 잘 살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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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죽음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 죽음이 머지 않은 말기 환자를 가리키는 용어인 '터미널 환자', 내가 얼마나 아픈지보다 얼마나 돈이 많은지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모님, 출생 신고가 안 되어 있거나 성인이 된 후에도 주민등록을 하지 않아 정부 기관 서류 상 존재하지도 않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행려자. 세상 모든 죽음은 다 아프다. 그렇기에 저자는 나 역시 죽는다는 사실과 나의 죽음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우리의 삶은 괜찮을 거라고. 죽음도 삶도 그저 우리의 일부인 것이다. 연말연시를 함께 보낸 이 책 덕분에 살아 있는 지금을 잘 살아내야겠다는 진리의 다짐을 새롭게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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