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길치는 아니지만 저자의 말에 동의할만한 경험은 여러 번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여행 뿐 아니라 하루를 보내는 데도 꽉 찬 계획을 짜는 편이었다. 하지만 열정도, MBTI도 늙는다. 해가 갈수록 나의 여행 일정은 허술해지고, To do list 역시 간소해지고 있다. 그래도 내 여행과 일상은 저자가 미국 연수 당시 머물렀던 하숙집 아줌마인 제인의 말처럼 '문제 없었다'. 사실 문제는 곳곳에서 터졌지만, 이렇게 저렇게 해결되는 듯 보이기도 하고, 많은 경우 문제를 그대로 끌어안고 지나가기도 했다. 여행과 인생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3장인 '여행, 사랑 그리고 사람'을 읽으며 그녀가 만난 소중한 인연들에 나 역시 두 손 모아 감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그 때 그 곳에서 구세주같은 그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문제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어렵게 구한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티켓을 팔아 해산물을 배터지게 같이 먹어준 저자의 쌍둥이 동생, 어쩌다 K마트에서 좋은 삼겹살을 사는 날에는 5층짜리 도서관을 뒤져 저자를 찾아내는 제인 아줌마, 여권이 든 가방을 도둑맞은 저자 일행을 도와준 자유로운 영혼의 털보 신부님, 비행기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하와이 키다리 아저씨와 국제 연애를 이어가다 혼인 신고를 한 저자의 지인 등.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여행도, 일상도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나는 마음 속으로 고흐가 한 시절을 지낸 아를로의 발권을 완료했다.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이 된 그곳에 앉아 고흐가 검은색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해 그려낸 밤하늘, 그리고 그 하늘의 별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야 말 것이다. 그날 그곳에 누가 내 옆에 앉아 있게 될 지. 서로의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해 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