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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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Cu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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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기획하고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

'돌보다'라는 뜻의 라틴어은 "curare"에서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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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와 작품을 사전 조사해 연구한 뒤 전시를 기획한다.

이후 해외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여 후 전시, 반납까지 전반적인 일을 맡는다.

전시를 결정하고 실제로 대여 계약을 체결하는데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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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Do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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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교육을 받아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일반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작품과 작가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안내인.

‘가르치다’라는 뜻의 라틴어 ‘docere’에서 유래.

매우 적은 보수를 받거나, 보수를 받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문화재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자원 봉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도슨트가 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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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겠다. 난 그림의 '그'자로 모른다.

또 하나 고백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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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미술 시간 외에는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는 나에게 그림은 그저 놀라움이다. 특히 실사라고밖에 볼 수 없는 작품 앞에서는 그저 "말도 안 돼!"를 연발하며 경외감을 느낀다. 때로는 '이게 왜 명작이지?' 하며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에 고개를 젓기도 한다. 스타 도슨트인 정우철의 <내가 사랑한 화가들>를 읽고 나니 보물 상자 하나를 건네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 상자 안에는 그림만이 아닌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는 비밀의 열쇠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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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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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거장이라 부르는 화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여러 일을 겪었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인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화가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그들의 인생을 따라가볼 필요가 있다.

저자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천재, 거장이라고 추앙받는 화가들의 인생을 공부한 끝에 찾아낸 그들의 공통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다. 그들은 삶에 버거운 고통이 찾아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다. 삶의 숙명과도 같은 그 공통점은 저자가 특별히 사랑하는 열한 명 화가들의 인생을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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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유한한 삶에서 변치 않는 사랑을 바랐던 마르크 샤갈' 편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인생에서 '사랑'은 전부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87년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샤갈의 본명은 모이셰 세갈이다. 샤갈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가족은 동유럽 유대인 출신이었으므로 그의 이름을 모세의 러시아식 발음인 모이셰라 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 샤갈은 훗날 파리로 활동지를 옮긴 후 개명한 이름이다.

그 시대 유대인들이 그랬듯 샤갈 또한 궁핍하고 가혹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유복한 상인 집안의 딸인 벨라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고, 운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경제적 차이가 너무 컸다. 벨라를 너무 사랑하지만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었던 샤갈은 화가로 성공한 뒤 다시 돌아와 청혼하겠다고 약속한 뒤 파리로 떠난다.

이 후 상황은 그가 1913년 그린 <손가락이 일곱 개인 자화상>을 통해 알 수 있다. 고향에 대한 추억을 품고 하루 빨리 화가로 성공해 벨라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을 일곱 개의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행히 그 노력은 빛을 발해 샤갈은 파리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인기를 얻어 금의환향하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벨라와 결혼식을 하고, 천사같은 딸을 낳은 후 샤갈의 인생은 행복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과 나치 치하를 겪으며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샤갈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 당시의 대표작이 바로 <연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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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그린 1937년 그는 몇 년동안 거절당했던 프랑스 시민권을 발급받았다. 한 편으로는 유대인으로서 끝없는 공포와 두려움, 좌절감에 시달린 시기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국기 색인 흰색, 파란색, 빨간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당시 샤갈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주된 정서는 단연 벨라에 대한 사랑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림 가운데 한 연인이 있는데 마치 샤갈이 벨라의 어깨에 기대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는 샤갈이 벨라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의지했음을 보여준다. 오른쪽 아래에는 고향 마을인 비테프스크를 떠올리게 하는 마을, 염소, 바이올린을 든 수탉도 보인다.

유대인 숙청에 앞장섰던 히틀러는 샤갈을 콕 집어 제거해야 할 예술가로 언급했었다. 그가 느낀 두려움과 불안은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안전을 위해 미국을 떠난 샤갈은 그 곳에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파리가 해방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최대한 빨리 프랑스로 돌아가고 싶었던 두 사람은 서둘러 짐을 챙긴다. 하지만 가벼운 인후통인 줄 알았던 벨라의 바이러스 감염은 결국 그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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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9월 2일 저녁 여섯 시경.

벨라가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사랑한 화가들, 34쪽

벨라의 장례식장에서 아기처럼 흐느끼던 샤갈은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다. 사랑하는 벨라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방황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벨라가 선물해준 딸이었다. 샤갈은 딸의 도움을 받아 벨라가 남긴 원고에 삽화를 그리기로 했다. 벨라의 글을 정리하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두 사람이 함께했던 시절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고 하니 벨라는 샤갈에게 진정한 뮤즈임에 틀림없다.

그 후 샤갈은 98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그림을 시작한 순간부터 생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그의 그림에는 사랑이 빠지지 않았다. 삶에 기쁨을 가져다 준 것도 사랑이오, 고통을 가져다 준 것도 사랑이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로막혀 실의에 빠져있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해 준 것 역시 사랑이었다. 오늘도 힘들고 외로운 하루를 보낸 누군가가 샤갈의 말을 듣고 내일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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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내가 사랑한 화가들,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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