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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밖으로
바버라 레이드 지음, 나희덕 옮김 / 제이픽 / 2024년 10월
평점 :

2년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며 가끔 놀라고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똑같이 낳아 길렀는데 이렇게 다르다니 하면서 말이다. 첫째 아이는 7살이 될 때까지 색연필을 들고 선 하나를 긋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이렇게 저렇게 그려달라고 주문만 했다. 반면 둘째 아이는 거침이 없었다. 색연필을 손에 쥔 첫 날부터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갔다. 첫째는 그런 둘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런 첫째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은 불편했다. 너도 해 봐, 못 그려도 괜찮아, 처음에는 누구나 생각만큼 그려지지 않아. 하지만 아이는 확고했다. 정말 선 하나를 긋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 학교에 입학하고 몇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아이가 방과 후 미술 수업에서 쓰던 스케치북을 가지고 왔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내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 안에는 아이의 세상이 있었다. 그동안 종이에 그려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생각처럼 잘 되지 않을까 봐 걱정돼서 아예 시작을 하지 않았던 아이만의 세상. 그날 나는 우와 우와 정말 멋지다!를 연발하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아이를 우렁차게 응원했다.

'터널 밖으로'의 주인공 닙은 첫째 아이와 많은 부분 닮아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가득찬 일상을 내달리는 모습, 자신만의 가치로 세상을 재구성하는 몰입이 그렇다. 특히 온갖 잡동사니로 꾸민 은신처와 거기서 혼자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닉의 모습을 보니 여러 마음이 오고간다. 여전히 나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입장에서 보면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러다 엄마의 입장에 서면 할 일은 잔뜩 쌓아놓고 쓰레기 더미에서 실실대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간다. 하지만 "오늘도 시끄럽고, 더럽고, 따분하고, 우울한 하루겠지."하며 주저앉을 뻔했던 닙이 "난 터널 끝으로 갈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온전히 그의 편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줄기 달콤한 바람이 닙과 그의 친구 롤라의 수염을 스쳐갈 때,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터널 끝은 닙이 상상한 것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어.
닙이 꿈꾸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기도 했고.
터널 밖으로


다행히 닙의 도전은 성공적이다. 현재까지는. 왜냐하면 아직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사에 정답은 없다. 닙의 도전과 모험이 옳은 것이었는지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닙의 모험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그의 도전은 닙을 똑 빼닮은 아이들을 통해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오늘 닙은 또 어디에서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있을까. 그 옆에는 하얀 깃털을 단 롤라와 아이들이 함께일테지. 함께라면 위험도 물리칠 수 있고, 함께라면 더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두에게 힘찬 응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