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인생이 파마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는 남자. 영어나 유럽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아 '주변부 지식인'으로 사는 것도 억울한데 자신이 말하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다가 서구의 유명한 누군가가 이야기하면 '옳다구나!'하고 주목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어 더 억울한 남자. 훗날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가로챌 수 없게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단어를 만들어 책으로 펴낸 남자. 그는 책에서 "창조는 곧 편집"이고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으 또다른 편집"이라고 말한다. 그저 단순히 섞거나 그럴듯한 짜깁기가 아닌 인간의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 즉 즐거운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이 바로 '에디톨로지'라고 정의한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일본에서 일본화를 배우는 학생이 된 그는 <에디톨로지>의 저자 김정운이다.
쓰고 보니 저자 소개가 너무 요란하다. 읽어보면 그렇게 요란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지만 쉽게 쓰윽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내용인 것은 분명하다. 내가 김정운 작가의 전작인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 작가는 글을 쉽게 쓰려고 노력하는구나' 였다. 독일에서 문화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전임강사로 강의 했으며, 발달심리학과 문화심리학과 관련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력으로 보건데 얼마나 아는 게 많겠는가. 방송 출연 모습을 보아도 '아는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달변가이다.
그는 분명 한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결코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할 때 낯선 단어가 등장하지만 이를 대중의 입장에서 쉽고 재미있게 풀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김정운이다. 그가 쓰는 글 또한 쉽고 재미있다. 자신의 이런 노력을 서문에서부터 구구절절히 밝히며 '나는 (글을 쉽고 재미있게 쓰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외치는 듯 하다. 본문 중에도 이런 외침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발언이 얄밉거나 나빠보이지 않는다. 글을 써보면 느낄 수 있다. 쉽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재미있는 글을 쓰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에디톨로지>는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로 단원을 나눈다. 역사적 사실이나 어떤 사건, 인물 등을 자신의 관점으로 편집해 기존 관점과는 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그 중 나는 '원급법'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르네상스 시대 원급법의 발견이 신 중심의 문화에서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뀌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원근법 회화에서 소실점의 위치는 화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관찰자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지점에 소실점을 맞춰야 한다고 우기는 태도는 지극히 권력적이다. 문제는 이처럼 '권력이 은폐된 소실점'을 사람들은 여전히 객관적이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다"(p.156) 라는 자신의 생각을 덧대 관점의 전환을 유도한다. 더 나아가 통제를 가하는 수단으로 '원근법'을 활용한 서양의 사례를 들며 자신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김정운은 KBS2 신년특강 3부작 '오늘, 미래를 만나다'를 통해 자신의 책 <에디톨로지>를 말하고 또 말했다. 특강에서 그가 한 모든 이야기는 모두 책에 쓰여있다. 방송으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되도록 일독을 권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그만의 유머를 느끼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