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
이다혜 지음 / 현암사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빨간 책방 팟캐스트에서 비문학을 소개하는 '씨네 21' 기자. 에세이스트이자 북 칼럼니스트. 단지 '이다혜'라서 고른 책이다. 그녀가 하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가 쓰는 글이 궁금했다.
'이다혜 기자의 페미니즘적 책 읽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자'를 중심에 둔 이야기다. 책과 영화, 저자가 겪은 일을 통해 '그냥 여자'를 말하는 글이다.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모든 것.
읽으면서 잊고 지냈던 기억이 하나둘 떠올랐다. 먼저 모성에 관한 이야기. 또래에 비해 이른 결혼을 한 나는 스물여섯에 첫아이를 낳았다.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엄마가 아니듯 나 역시 '엄마'는 처음이었다. 아이를 낳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였다.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다음에 나타나고 싶었다. 나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엄마를 글로, 몸으로 배우며 아이를 키웠다. 둘째라면 쉬울까? 아니다. 누구에게나 둘째 역시 첫 경험이다. 그건 셋째건 넷째건 다섯째건. 모성애는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라는 사실을 두 아이를 키우며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둘, 성추행에 관한 기억.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거다. 유행에 편승해 주산학원을 다녔는데,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유는 차량 운행을 하는 학원 원장이 자꾸 앞자리에 앉으라고 해서다. 나는 친구들과 뒤에 앉고 싶은데 앞에 앉으라고 해서 싫었고, 다리를 더듬어서 싫었다. 확실한 기억이 아니라 희미한 기억. 그럼에도 앞자리에 앉는 게 싫어서, 그걸 엄마에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어서(초등학교 저학년의 언어로 기분이 나쁜 이유를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만 다녔다. 아마 남자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그게 뭐 대수라고.
이런 기억이 '여자라면' 한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여자여서' 겪어야 한다는 게 슬프달까. 이 책을 읽으며 '여자이기에' 겪어야 했던 일임을 깨달았다. 저자가 여자 고등학교 3학년에게 추천한 세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혼자하는 여행을 해 볼 것, 책 읽는 취미를 붙이는 것과 돈을 버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불리기 전에, 내 이름으로 오래도록 불려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잠시 스쳐간 요네하라 마리도 반가웠다.
책과 영화, 주변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다혜 기자의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