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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간 책 - 오염된 세상에 맞서는 독서 생존기
서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4월
평점 :
글쓰기라는 게 그렇다.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고, 쓰다 보면 쉬울 것 같은데 갈수록 어려워지고, 몇 년이 지나도록 비슷한 글만 쓰는 나를 보며 흠칫하게 된다. 마침표를 찍고 스크롤을 올려 첫 문단으로 돌아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뫼비우스의 띠를 한없이 걷는 기분이다. 부담감으로 어깨는 축 처지고, 오랜 시간 움직인 다리는 근육통으로 움찔한다. 그럼에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가두고 싶어 이렇게 끄적거린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저리 난리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이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는가.
'서민'이라서 집어온 책이다. 쉬우면서도 간결하게, 현실을 유머로 승화하는 글쓰기에 능한 작가다. 2015년에 나온 책이라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자주 등장한다. 촛불시위, 탄핵, 선거로 이어진 2017년에 이 책을 읽으며 행복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았다면 웃는 얼굴로 읽을 수 없었으리라.
작가가 주로 활동한 알라딘 블로그와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50편이 넘는 서평을 모은 책은 처음이거니와 목차에 적힌 익숙한 제목이 반가웠다. 책의 최종 목표는 결국 '독자가 읽는 것'이다. 누구보다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서평집이다. 서민 특유의 '돌려까기' 신공이 곳곳에 숨어있다. 커피나 차를 뿜을지도 모르니 조심하길 바란다.
케임브리지 석좌교수인 장하석 교수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저자. 그의 행보가 결국 자신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하석아, 미안하다'(<온도계의 철학> 서평)에서 시치미떼는 얼굴이 그려졌다. 기생충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인 그가 성석제의 <투명인간>을 '기생충'을 주제로 쓴 서평은 낯설고도 새로웠다. 책을 읽고 아내와의 대화를 복기한다거나 자신을 투영해 쓴 글에서 '서민다움'을 느꼈다. 딱 서민답게, 서민스럽게 쓴 글이다.
"잘 쓴 글을 읽으면 일단 감탄하고, 그다음에는 부러워하고, 마지막에는 비결을 알고 싶어 한다. 앞의 두 단계를 지겹게 거친 끝에 글 잘 쓰는 비결을 알고 싶은 단계에 도달해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책을 여럿 읽었지만, 내 글솜씨는 여전히 답보 상태였다."(182p.) 나와 비슷한 감상이 나올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책과 함께 한 기분이다.
서평집의 장점은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며 말할 수 있다'에 있다. 그의 생각이 내 생각인 것처럼 약간의 지름길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이 읽는 책과 생각이 궁금할 때, 다양한 형태의 서평이 읽고 싶을 때 추천한다.